영혼의 지침/책 이야기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플랭클

팡씨1 2014. 6. 5. 14:53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플랭클

 

프로이드는 고통의 원인을 모순된 무의식적 동기에서 비롯된다고 본반면(성적인 욕구불만) 프랭클은 환자 자신이 존재에 대한 의미와 책임을 발견하지 못한데 있다고 생각한다.(의미를 찾으려는 의지)

산다는 것은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 남기 위해서는 그러한 시련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수용소에서도 인간의 모습은 두가지 악하거나 선하거나 아니면 고매한 인격을 가추거나 아니면 미천한 인격을 가진 둘중 하나의 모습이다. 그리고 죽음의 예감이 온다하여도 인간은 냉정하거나 아무일 없듯이 여기곤 한다. 고통이 다가올때 그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족감을 얻을 수 있다.

같은 처지의 수용소 사람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생존경쟁의 모습은 변함없다. 믿음을 상실하면 삶의 의지도 마찬가지로 사라진다. 최악의 상황이 닥쳐 온다해도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 그리고 모멸감을 얻는 것은 죽음을 얻는 것보다 더 굴욕적이다. 수용소 안에서의 고통 속에서도 유머는 살아 있다. 그리고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발견 할 수 있다. 어둠속에서도 빛은 있나니 빛은 어둠속에서 빛난다. 수용소의 단체 활동 생활 속에서도 혼자 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모든 존재감과 자아를 잃고 오로지 번호로서만 존재하는 처절한 벌거 벗음에 속에서도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 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길 수 없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 일으키고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시련과 죽음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사람이 자기의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 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 폭 넓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의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자기 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 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니체는 왜 살아야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견딜수 있다고 했다.

이세상에 자기를 대체한 존재는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계속 지켜야하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수용소에서 시련을 겪고 살아 남은 자들은 이제 신 이외에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되었다.

 

#. 로고테라피의 개념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미래에 환자가 이뤄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동시에 로고테라피는 정신 질환을 일으키는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는 악순환 형성과 송환 기재를 약화 시킨다. 이렇게 해서 정신 질환 환자에게 전형적인 자기집중증상이 발생하고 심화되는 것을 막는다.

정신분석은 환자가 침대에 누원서 의사에게 때로는 하기 힘든 말을 해야하는 것이지만 로고테라피는 환자가 똑바로 앉아서 의사로부터 때로는 듣기 거북한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차이점)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 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 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임을 인식해야한다. 즉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 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 할 수 있다. 따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 수록 즉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더 인간다워지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봉사(수행)를 통해 스스로 만족과 행복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의 내면에는 두개의 모습 즉 성자처럼 또는 돼지처럼 두가지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불필요한 시련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하지만 어쩔 수 없는 시련은 뚫고 의지로서 극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