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
사마천 사기열전
1장. 백이 열전
고죽국의 태자 백이와 숙제는 왕의 자리를 마다하고 노인을 잘 대한다는 서백창(문왕)을 찾아 갔으나 문왕은 죽고 무왕에게 갔더니 상나라 주왕을 즉 군주를 몰아내는 인하지 않은 자의 곡식을 얻어 먹을 수 없다며 수양산에 올라 고사리로 연명하다 죽었다. 도척이라는 춘추시대 살인자이자 아주 나쁜자가 있었는데 그자는 호의 호식하며 천수를 살았다. 사마천은 말한다 '하늘의 도가 있는가?'
2장. 관.안 열전
포숙아;
제나라 양공이 포악하여 두태자 중 소백(환공)은 포숙아와 규는 관이오와 제나라를 도망 나와 떠돌다 양공이 피살되자 다시 돌아와 왕이되기위한 형제간 싸움에서 관중이 소백의 혁띠에 화살을 쏘아 죽이지 못하고 실패 해 죄를 지었으나 포숙아가 그의 재능을 알고 추천하여 제 환공을 천하 제일의 패자로 많들었다. 이 절에서 사마천은 관중 보다 포숙아의 의리를 더욱 칭송하고 있다. '나를 낳아준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이는 포숙이다' 포숙이 용서한 관중의 못된 일들
이익을 불공정하게 나누기, 고집 주장하다 실패하기, 세번 벼슬길 나갔다 실패, 세번 싸움에 나아갔다 실패, 규를 모신 소홀은 자결 하였으나 혼자 살아남은 비굴함 등등. 포숙의 이해심은 대단 했다.
안영;
제나라 재상을 오십년한 인물
월석보라는 죄인을 보석금을 주고 집으로 데려와 아무 것도 시키지 않차 월석보는 '군자는 자기를 알아 주지 않는 자에게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들어 낸다' 라며 떠나려하자 안영은 그를 안으로 모시고 상객으로 대우 했다. 이는 안영의 사람 대함을 칭송한 것이다.
안영의 마부 아내가 안영은 외소해도 재상이며 겸손한데 그 마부는 덩치도 크고 몹시 거만함으로 이혼을 요구하자 태도를 바꾼다. 안영이 왜 바뀌었는지 묻자 그가 아내 이야기를 하자 안영은 마부를 추대하여 대부로 삼았다. 그의 잘못을 고친 것을 높이 샀던 것이다. 안영이 장공의 죽음 앞에서도 예를 다하자 태사공은 안영의 마음 자세를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을 보충할 것을 생각한다' 하였다.
3장. 노자.한비 열전
노자,장자,신불해,한비의 철학을 개괄적으로 논하며 이들의 유세에 대한 어려움을 구구절절 말함. 유세가 어려운 이유는 군주의 마음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일단 군주의 마음에 맞추는 것이 첫째이고 그 다음 신뢰가 쌓이면 본격적인 유세가 가능 함을 말한다.
송나라의 한부자 집 담장이 무너져 아들과 이웃 사람이 당장 수리하지 않으면 도둑이들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막상 도둑을 맡고 이웃을 의심하더라는 이야기. 정나라가 호나라에게 공주를 시집 보내고 호나라을 치는게 어떻겠는 가 신하에게 묻고 그렇게 하셔야 한다고 하자 그 신료를 죽였다. 호나라는 안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나라가 호 나라를 쳐 나라를 빼았겼다는 이야기. 진시황에게 한비를 소개한 이사가 결국 한비를 모함해서 독약을 맞게하여 세난편을 지고도 자기 목숨을 잃은 한비 이야기. 위나라 미자하와 왕의 친분을 이용 왕의 마차를 빌리고 먹던 복숭아를 건내주던 미자하가 한순간 왕의 총애를 잃자 같은 행동에서도 이쁨과 죽음의 희비가 교차하는 이야기. 죽 역린을 살펴 군주의 마음을 보고서 유세하라는 내용의 글. 기가 막힌 내용이 담겼다.
4장. 사마양저 열전
경공에게 안영의 추천으로 대부에 올라 전장에 나가기전 왕에게 감군으로 장고를 추천 받아 출정하기로 약속 하였으나 장고가 출정전 변변치 않은 양저를 깔보아 송별연을 하느라 늦게오자 군법대로본보기로 왕의 사면령이 도착하기도 전에 그를 참수하여 군율을 잡은 이야기. 그 후세는 전상으로 제나라 위왕이 여씨왕권을 찬탈했다.
5장. 손자. 오기 열전
손무는 오나라 왕 합려에게 부녀자를 상대로 궁녀 둘을 부절로 참수하여 군법의 위엄을 세우자 합려는 그를 장군으로 임명하고 훗날 손무는 초와 제를 치는 공을 세웠다.
손빈은 방연과 동문 수학생이다. 위나라에 장군이된 방연은 손빈을 두렵고 시기하여 그를 꾀어 다리를 자르고 묵형을 하여 놓고 잘해주는 척하였다. 제나라 사신이 제 위왕의 아들 전기에게 손빈을 소개시켜주고 상중하 말세마리식 경주 게임을 이기게 하고 군사가 된다. 위나라와 조나라가 합세하여 한을 공격하자 한은 제 전기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군사인 손빈의 계책으로 후퇴하는 척하며 솥을 줄여나가고 결국 위 장수 방연을 꼬득여 함정에 넣고 방연은 여기서 죽을 거다 라는 글을 직접 보게한뒤 스스로 자결하게한다. 그 둘의 시기와 복수를 보면 세상 믿을 사람 없다는 느낌.
오기는 노나라 사람으로 제나라와 대항키 위해 장군으로 임명하려 하였으나 처가 제나라 사람이라 않된다고 하자 그 처를 죽였던 사람으로 나중 노나라 왕이 악날하다 하여 거부하자 위나라의 장수가 되었고 결국 진나라를 공격하여 여러 공로를 쌓았다. 오기는 병사를 아꼈고 종기 고름 까지 빨자 그 어머니가 대성 통곡을 했다. 이유인 즉 그 여자의 남편도 오기 장군이 종기를 빨아주자 죽기 살기로 싸우다 죽었고 이제 아들 도 죽게 되었다는 마음에서 였다. 위문후가 산세의 험준함으로 나라의 안전 방위를 말하자 오기는 하 걸왕과 상 주왕도 산세는 험준 했다며 나라의 존재는 임금의 덕에 있지 지형의 형세에 있지 않다고 일침의 말을 했다.
재상 자리에 전문이 오르자 오기는 실망하여 전문에게 나라의 공을 누가 더 높였는지 묻자 전문은 당연 오기가 높다하고 말하고 되 묻기를 그럼 왕이 둘중 누굴 재상으로 뽑겠소하자 오기는 생각하다가 당연 당신 전문이오 이렇게 말했다. 공숙이란자가 모함하여 오기에게 공주를 밉보이에해 놓고 문후 에게는 공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반하려는 것이라 모함하였는데 그걸 모르는 오기는 공주를 마다하여 나중에 위에서 초나라로 도망 가게 되었다. 초나라 도왕은 오기를 재상으로하여 주변 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내부의 결속을 오기 중심으로 끌어가자 인심이 흉흉해졌다. 그리하여 도왕이 죽자 그 왕족들이 그간의 오기가 미워 오기를 죽이려하자 오기는 죽은 도왕 시체위에 엎들여 화살 맞고 죽었다. 나중 태자는 도왕에게 화살을 쏜 왕족을 색출하고 오기는 도왕의 시신을 지킨 의리의 영웅이 되었다.
6장. 오자서 열전
평왕이 비무기의 계략에 빠져 태자 건의 신부감 진 공주를 낙아채고 후한이 두려웠던 비무기가 태자를 모함하자 태부 오사를 불러 묻는다. 오사는 평왕에게 아비가 어찌 자식을 멀리하느냐 말하지만 결국 비무기의 태자가 원한을 품고 왕을 모함하려한다 말하며 꼬득여 평왕은 자식을 죽이려하고 자시은 이를 전해 듣고 송으로 도주 한다. 후한이 두려운 비무기는 오사의 두 아들 오상과 오운을 함께 불러들여 죽여야 한다고 하자 왕은 그대로 시행 했고 오상은 효자로서 아버지와 죽음을 당하고 동생 오운(오자서)는 송으로가 훗날 원수를 갑기로 했다.
정에서 진나라로 다시 정나라로 가다가 태자 건은 죽고 오자서는 건의 아들 승을 데리고 오나라 갔다. 오 요왕의 동생 공자 광(훗날 합려)에게 역모의 꿈이 있는 것을 알아 채고 전제를 소개시켜 주었다. 결국 공자 광은 전제를 시켜 물고기 뱃속에 칼을 숨켜 요왕을 암살하고 오왕 합려가된 후 오자서를 발탁하여 등용시켰다. 초의 백비는 오나라로 망명하여 대부가 되었고 오자서와 함께 합려의 오군으로 초를 깨부수 었다. 그리고 평왕의 묘를 파해쳐 300대의 채직을 (굴묘편시) 휘둘렀다. 합려동생 부개가 모반하려하자 합려는 초에서 오나라로 복귀하였다. 합려가 월 구천을 치다가 다쳐 앓다가 죽자 태자 부차가 왕이되고 백비는 태재가 되었다. 부차는 월을 공격하여 회계산에서 구천을 사로잡아 신하가 되게 하였고 그뒤로는 제나라를 여러번 공격 하였느나 오자서는 제 보다는 월을 멸망시켜야 한다고 간했다. 하자만 구천에게서 뇌물을 받은 백비는 오자서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포씨에게 아들을 맡기고 온 것은 역적의 태도라 고자질하자 부차는 멍청하게 백비의 말을 듣고 자결을 명하여 오자서는 죽었다. 월 왕 구천은 상담하며 결국 부차를 죽이고 백비도 죽여 원한을 품고 있던 것을 풀었다. 이장에서 원한을 품은 저들의 독기가 대단함을 알겠도다.
7장. 중니(공자) 제자 열전
안회-가난. 자아(재여)-3년상1년으로 줄이려다 공자에게 핀잔들음. 공야장 -공자 딸과결혼. 자우-얼굴은 못났으나 능력은 대빵. 자공-구천과 부차 사이에서 부차를 망하게 함. 자유-닭 잡는데 소 잡는칼을 쓰다. 자하-시경을 논하다 흰색바탕이어야 색 칠할만하다. 증삼-효의 달인. 자로-거칠고 성질 머리에 오래 못살 놈. 등등
8장 상군(상앙) 열전
위나라의 공자 였고 공숙좌가 위나라 혜왕에게 천거하였으며 만약 들어주지 않으실 거면 상앙(공손앙)을 국경 넘기전에 죽여야 한다고 하고 그 사실을 상앙에게도 알림. 진나라 효공이 널리 인재를 찾는다는 소리에 경감을 통해 효공을 만나 제왕에 대해 삼황오제, 주 문왕과 무왕 주공을 논하며 말했으나 탐탁치 않게 받아들이자 추천한 경감이 잘좀해보라 했다 다시 효공을 만나 이번엔 다섯 패공을 이야기 했더니 이제야 현실적이며 가까운 현재의 자기가 바라던 내용이라며 반겨 등용했다. 유세하기는 왕의 뜻을 간파하는데 성패가 달렸다.
상앙은 옛법을 따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현실에 맞는 새로운 법을 만들것을 주장하였다. 새로운 법령을 만들고 공지하였으나 백성이 관심이 없자 도성 남문에 큰 나무를 놓고 이를 북문으로 옴기는 자에게 십금을 준다했지만 아무도 않믿자 오십금으로 올리고 결국 옮긴자에게 실제 금을 주어 국가가 정한 약속을 지켜백성이 법을 따르게 했다. 처음 법에 대한 불만이 많자 위앙은 태자가 불법을 한 것을 계기로 태부의 목을 베었다. 그뒤로는 법도 잘 지켜져 오히려 좋아하는 백성이 많았다. 도량형도 통일하고 부자가 한집에 살지 못하도록하여 지방을 확장 시켰다. 위나라를 모국이라며 화친하자 꼬득인 뒤 불연듯 공격하여 위나라 땅을 빼았자 위 혜왕은 그때서 공숙좌의 말을 무시한 것을 후회 했다.
상앙은 효공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 했으나 조량은 그의 그런 태도에 법보다 덕이 중요함을 수차례 지적했다 결국 강하면 부러진다고 효왕이 죽고 혜문왕이 등극하자 예전 상앙에게 당한 코 잘린 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죄를 고발하였다 상앙이 위나라로 피신하였으나 신분증 없는 사람은 신고하는 그가 만든 법에 의해 쫒기다가 위나라 장군 앙을 속인죄로 위나라에서 잡혀 진으로 보내지고 거혈형을 당해 죽었다. 태사공은 말한다 법만 앞세우고 권세를 부리며 혼자 잘난척하다 실세 왕이 죽자 그간의 원한으로 스스로 만든 법에 의해 사지를 찟겨 죽게 될 줄 몰랐는가? 자고로 세상 삶은 덕을 행해야 함이로다.
9장. 소진 열전
소진은 낙양 사람으로 집안 형제 가족으로부터 농사짓지도 않고 입술만 살아 았다고 핀잔을 듣는다. 어느날 유세하기 위해 주서와 음부를 독파하고 당시 상앙에 지쳐 있는 진 혜공에 유세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는 다시 조나라에 갔으나 역시 거절 당하고 연라나 문후에게 진과 조를 비교하며 진은 천리 멀리 있어 연을 공격하기 어렵지만 조는 백리안에 있어 공격 받기 쉬우므로 가까이 있는 조와 제나라와 합종하기를 추천한다.
먼저 조나라에 들러 진을 제외한 육국의 합종을 이야기하자 조왕은 위 계책을 따르기로 한다. 다음으로 한나라 선왕에게 진을 따으면 야금야금 땅을 다 빼앗기게 되므로 소꼬리보다 닭머리가 되라며 합종을 강조하자 한이 계책을 따르기로 한다. 이번에는 위 양왕을 찾아가 진에 땅을 때오주고 의탁해야 한다는 신하는 개인의 영달을 위한 술책이지 결코 위를 위한 계책이 아님을 밝혀 줄기가되어 고끼를 쓰기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며 설득 시킨다. 이번엔 제나라 선왕을 찾아가 제나라의 물자와 부귀를 높이 평가하고 멀리 진나라가 조위한 세나라를 두고 제를 먼저 칠 수는 없다며 너무 걱정말고 주변국과 합종 항 것을 권하자 조나라 조칙까지 들고 찿아온 소진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다. 초나라 위왕을 찾은 소진은 진과 초 둘중 하나가 살아 남는 것을 강조하며 합종하여 진에 맞서 대업을 이룰 것을 주장하고 초왕은 이를 받아들인다. 이렇게하여 6국의 재상이된 소진은 고향으로 금위환양했고 그간 깔보던 친족도 머리를 조아렸다. 소진은 그간 도움을 준 사람에게 보답을 했으니 합종은 결국 소진의 부귀를 위한 것이었구나. 합종으로 진이 숨죽이고 있던 기간은 겨우 15년에 불과하다. 위와 제가 짜고 조를 치니 이때 소진은 합종위반에 대한 복수로 연으로가 제를 치게했으나 조는 소진의 합종을 결국 깨버렸다.
진의 공주가 연 나라 이왕과 결혼 하고 제나라는 연나라의 열개성을 빼앗자 소진이 연을 위해 제나라에거서 진왕의 사위를 못살게 굴면 진이 제를 칭 것이니 당장 성을 연에 돌려 줄것을 말하자 제가 당장 돌려준다. 소진 과연 입만 살아 있구나! 결국 연나라는 소진의 행동이 맘에 안들어 푸대접하자 소진은 자신의 진정성을 강조하며 예로서 불륜을 저지른 여인이 남편을 죽이려 첩에게 독약을 올리게 했으나 그 첩이 일부로 약 사발을 업질러 주인으로 부터 몰매를 맞았다는 이야기를 빗대어 말하자 연왕은 소진을 받아들인다.
소진은 연나라 문완의 처 황후와 정을 통하였다. 하지만 문왕 아들 이왕은 모른체 했다. 소진이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 투항하여 제나라를 탕진하게 하겠다 하고 제로 가자 제에서는 융숭히 받들고 높이 썼다. 시기한 자들이 소진을 죽이려하자 소진은 제 선왕에게 저를 거렬형으로 죽이시고 연을 위해 제를 배반 했다고 알리면 소진을 죽이려 했던 자들이 스스로 나타날 것이라 하자 그렇게 했다. 실제 그들이 나타나자 그들도 모두 잡아 죽였다. 연 나라는 말했다. '제나라가 소진 선생의 원수를 갚는 방법이 너무 지나치구나'하고.
소대 소려는 소진의 동생으로 그들 역시 연마라를 위한 외교 노력을 열심히 했고 제나라를 치는데 공이 컸다.
새상 사람들은 소진이 반간계를 이용했다며 그의 나쁜 점을 많이 이야기하나 태사공은 좋게 볼려고 애썼다 한다.
10장. 장의 열전
초 재상과 술을 먹다 구슬을 훔친 누명을 쓰고 몰매를 맞고 돌아와 처에게 '내 혀가 아직 붙어 있소?' 라는 말을 하였다 한다. 소진과 장의는 귀곡선생의 문하 동기생으로 한번은 소진이 일부러 장의를 불러 천하게 대하며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다 해서 장의는 이를 갈고 진으로가 소진의 일과 반대로 연횡책을 내게 만들었는데 이는 소진이 장의의 기가 꺽길까봐 일부로 그리 했다는 것이다. 소진은 장의를 돌봐줄 객인까지 붙여 주었고 진에서 등용되자 객은 소진의 후사를 알렸다. 장의는 뒤 늦게 깨닫고 소진에 감사하고 그를 위해 조나라는 치지 않고 예전 초나라 재상의 누명에 분개하여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장의는 위나라에게 합종은 말도 않된다며 같은 부모의 자식도 재물을 두고 다투는데 하물며 나라의 이익을 두고 합종은 말도 않된다며 진에 의지 할 것을 강압하여 협박도하고 권유도한다.
당시 초가 가장 강대하므로 연횡하여 초를 무찌르자고 꼬득였다. 결국 위는 진을 따른다.
장의는 초에 사신으로가 제와 합종을 끊으면 상과오땅 600리를 준다고하며 진공주를 시집보내 사둔국가를 맺자고하나 진진이 이는 순 거짓이라하며 초 회왕에게 속지 말라고한다. 회왕은 땅 욕심으로 장의를 따르기로 하자 제나라는 오히려 초와 단절하고 진에 붙어 초를 치려한다. 장의는 오땅 6리를 때오 주겠다고 출여ㅠ말을하니 함께온 초사신이 초 회왕에게 알리자 초왕은 장의를 미워하여 당장 보내주면 검중 땅을 진에게 주겠다고 말한다. 장의는 스스로 사신이 되어 초로 가겠다고 하자 진왕이 말린다 하지만 장의는 초왕의 황후가 아집있음을 알고 황후의 근친에게 진의 어여뿐 여자를 초왕에게 바칠고라고 운을 띠우자 시기하여 검중 땅을 아직 주지도 않았는데 장의를사신으로 보낸것을 보면 진이 초를 믿는다는 것인데 장의를 죽이면 진이 초를 공격할 것이라하여 초왕은 장의를 살려 준다. 장의는 초 회왕에게 천하 진과 초는 호랑이요 나머지국은 양인데 호랑이끼리 잘 해보자며 소진의 합종을 깨고 공주와 기타 인질을 공유하며 잘해보자 하니. 초왕은 검중땅을 잃지도 않고 손해 본 것 없으니 그리 하자며 장의를 살려 보내고 진과 화친을 하였다. 이때 초의 대부 굴원은 장의를 잡아 죽일 절호의 기회라며 회왕에게 간청 했으나 들어 먹질 않자. 멱라수에 빠져 자살하여 떠나버린다.
장의는 한나라로가서 한나라는 자원도 곡식도 군사도 열세인데 까불지 말라며 협박하고 합종한답시고 초에 붙으면 가만 안둘거라며 진에 협조하여 진이 초를 물리치면 그 땅을 조금 차지하는게 어떻겠냐고 회유허니 한왕이 진을 따르기로 했다. 장의는 진에 돌아와 공로로 무신군에 올랐다.
이번엔 제나라 민왕에게 가서 합종을 말하는 놈들은 나라보다 자기 영달을 위할 뿐이라고 말하며 제나라가 강하지만 조나라가 진 및 제와 싸워 이기고도 망한 이유는 기력이 다하여 그렇다하며 제나라도 강하지만 초와 진이 결혼 사둔관계요 위와 한이 이미 진에 붙었으니 어찌 할 거냐며 은근 협박하자 제 민왕은 장의의 위견에 따르기로 하였다. 이제 조로 향한 장의는 합종은 이제 끝났고 조나라 홀로 남았으미 어쩔거냐며 협박하자 조왕은 선제 선왕이 봉양군의 잘못된 시책을 따랐기 때문이라며 지 잘못이 아니라 변명하고 장의의 연횡을 받아들여 진을 따르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연나라를 향한 장의는 조나라도 진에 의탁했는데 어쩔거냐며 다그치자. 연 소왕은 스스로 허우대는 크지만 오린아이 같다며 스스로 비하하고 측근들이 똑똑하지 못해 이적지 진을 잘 못봤다며 조아리며 진에 항복하였다. 장의가 진에 돌아오자 혜왕은 죽고 무왕이 진의 왕을 이었다.
무왕은 장의와 사이가 좋치 않았다. 신료들은 장의를 상소했으며 미워하였다. 장의가 마지막으로 무왕에게 계책을 내 놓았다. 제나라는 나를 미워하니 내가 위나라로 가면 위를 칠 것이니 무왕은 이때 한을치고 주나라까지쳐 제기를 빼았으시오. 라고하자 무왕이 구에 따랐고. 한편 초에 사신인 것처럼 꾸며 제나라에 사신을 보내 이 이야기를 넌즈시 비추니 제왕이 위 공겨을 멈추었다. 장의는 위나라에서 재상을 하다 죽었다.
진진의계책 한과위가 싸워 말려야 할지 어쩔지를 혜왕이 묻자 호랑이 두마리가 소 한마리를 두고 싸우면 한놈은 죽고 한놈은 상처를 입을 것이니 지켜보다가 그놈을 죽이라고 말하자 그대로 했다. 진진과 서수는 같은 연횡책을 내 놓으면서도 장의와 사이가 않좋았다. 태사공은 말한다. 삼진 땅에서는 이와 같이 책사가 많이 배출되었다. 장의의 술책이 심한 것이 많았는데도 세상 사람들이 소진을 더 욕한 것은 소진이 먼저 죽자 장의가 소진을 욕하고 다녔기 때문일 거라고..그리고 이 두 인물은 결국 나라를 전쟁으로 기울게한 위험한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11장. 저리자.감무 열전
저리자는 진 혜왕의 이복 동생으로 진나라의 장수이며 지혜가 많은 자 였다.
전국 여섯 국가간 싸움을 부추겨 그들끼리 싸우게 만들기도 하였다.
감무는 혜왕때 등용되어 무왕때 좌승상이되었고. 왕의 신임여부에 대한 신하의 입장을 예로 말했다. 공자 제자 증삼과 똑 같은 이름의 한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증삼의 어머니가 두번까지 참다 세번째 같은 말을 듣고는 줄행랑을 놓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렇틋 거짓도 반복되면 믿게된다는 교훈. 왕이 주변 시한의 거짓으로 충신을 잃게 된다는 이야기다.
감무는 제나라로 도망가고 나중 제의 재상까지 된다. 그의 손자 감라는 진을위해 시묘한 계책을 내어 조나라를 설득시키고 연나라를 공격한다. 이들은 전국시대 권모술수의 책사였다.
12장. 양후 열전
이름은 위염 무왕과 동생 소왕의 어머니 선태후의 남동생이다. 소왕이 어려 선태후가 섭정하고 친외삼촌인 위염이 정권을 장악했다.
양후는 진 재상을 세번하고 후에 상국이되었다. 위한초를 이용하여 제와 조를 견제하고 진이 동쪽으로 확장하는데 공이컸다. 그리고 백기를 발굴하여 장군이되게 하였다. 하지만 소왕36년 이후부터 범저의 등장으로 위염은 소왕의 미움을 받고 물러났으나 재산은 왕보다 더 많았다. 한다. 권세가 한없이 영원하지 않는다. 떠나야 할 줄 알면서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끝내 말년엔 슬픔과 실망만 남으리.
13장. 백기.왕전 열전
백기는 무안후에 봉해지고 한조위초와 싸워 승리했다. 진재상 응후가 조나라의 염파 장군보다 조괄의 능력이 뛰어나다며 진군은 조장군을 무척 두려워 한다는 헛소문을 퍼트리자 조왕은 조괄을 장군으로 임명하여 진을 공격한다. 진 백기는 복병을 깔아 놓고 결국 조괄을 비롯한 조 나라 군사 40만을 조나라사람은 배반을 밥먹듯이 한다하여 생매장 시켰다.
응후와 백기는 점차 사이가 않좋아졌고 결국 소왕은 한단을 공격하기위해 지시한 싸움에 나가는 것을 피하기만 하는 무안군에게 칼을 내려 자결하게 했다.
이는 무안군이 조괄의 병사들을 생매장 시킨 댓가리라. 죽음 앞에 과거의 영광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이란 내일 죽을 것 처럼 살아야하지 않는가?
왕존은 시황제때 장수로 조를평정하고 연나라의 형가 자객 사건을 빌미로 연을 처 평정하였다. 그의 아들 왕분은 초위를 치고 형나라를 공격하려하자 시왕이 군사 몇이면 되겠냐는 질문에 60만 이야기 했다가 20만 이야기한 이신 장군에게 기회를 빼앗기고 삐져 칩거했다. 이신이 결국 형나라에게 지자 시황은 다시 왕분에게 60만을 줄테니 형을 티라하자 후손들이 먹고도 남을 봉록을 미리 달라한다. 주변인이 너무 욕심부리는 것 아니냐며 시황의 노여움을 사게될 것이라 말하자 오히려 시황제는 요구 안하는 것을 의심 할거라며 강력히 주장했다. 결국 그의 예견대로 시황제는 봉록을 미리줬고 형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겼다. 이후 연과 제를 모두 평정하고 시황26년 천하가 통일 되었다. 왕분의 아들 왕이가 나중 조나라를 포위하고 싸우다 거록 전투에서 항우에게 잡혀 항복했다.
14장. 맹자.순경 열전
맹자는 제에 붙어보려다 별볼일 없자 양나라 혜왕에게 갔다. 당시 진은 상앙 제는 손빈과 전기 초와위는 오기등 전국시대 전쟁과 혼란의 최고조 시점에 이익을 쫒는 것에 반했으니 맹자의 학설이 받아드려지기 가장 어려운 시점이었다. 맹자여 때를 잘못 받았구나.
추기는 거문고를 잘했고. 추연은 오행을 잘보아 여러 국에서 융숭히 모셨다. 솥을 매고 요리사가 되어 탕왕이 제왕이되게한 이윤, 수레 밑에서 소를치다 등용되어 진 목공을 제왕이 되게한 백리해에 추연을 비유했다.
순우곤은 양 혜왕을 만나 한마디도 하지 않차 혜왕이 날 무시하는 거요 물었다. 순우곤은 혜왕은 관심이 다른 곳에 있더니다하니 그 뒤로 잘 들었다. 무턱대고 말라는 것이 아니라 말할 타이밍을 잘 잡아 대응해야 한다.
순경은 순자로 제나라에서 살았고 진 승상 이사의 스승이었다.
15장. 맹상군 열전
전영은 맹상군 전문의 아버지로 제나라 위왕 선왕 민왕을 모시며 재상이었다. 문이 5월5일 태어나자 아들은 지게문 높이만큼 자라면 아버지를 해친다는 풍속으로 죽이라 했지만 첩이 몰래 키워 성인이 되자 뒤늦게 알개된 전영이 화를 내자 사람의 운명은 하늘의 뜻이지 지게문의 높이가 아니라며 설상 그렇타 치면 지게문을 더 높이면 그만이라하였다. 문은 또 아버지에게 나라는 엉망인데 재상이신 아버지는 모든 것이 넘치고도 남는다며 빈객을 후하게 대접하였다. 전영은 화가 풀리고 맹상군이 선비들을 좋아하자 그
를 인정하고 나중에 죽자 설땅의 재산과명예는 맹상군에게 귀의하였다.
맹상군을 진 소왕이 초청하여 재상으로 삼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가 재상이되면 제를위하지 진을 위하지 않을 거라며 이참에 그를 가두어 놓차고 제안하자. 맹상군은 소왕의 첩에게 부탁하여 빠져나가게 졸라 달라한다. 첩은 여우털 옷이 탐나 그것을 달라하자 하나 밖에 없고 이미 소왕에게 주었다하자 맹상군의 식객중 개소리 하는 사람이 여우털옷을 훔쳐 그 첩에게 주고 첩은 소왕을 꼬득여 풀어주게 했다. 함곡관까지 주랭랑을처서 왔지만 날이 밝기 전에 성문 통행은 금지이고 소왕은 후회하고 그를 쫒자 이번에는 식객중 닭울음 하는자가 울어대니 문이 열려 도망 나왔다. 이후로 하찬은 식객 이라도 귀하게 ㅆ는 맹상군의 가치는 더욱 올랐고 조나라로 가던 중 조나라 사람드이 맹상군의 외모에 반감과 실망의 소릴하저 구 빈객들이 칼을 휘둘러 수백명이 죽었다. 여기서 맹성군의 허례허식이 발견된다.
맹상군의 봉지 설땅의 조세 징수자 위자가 자기 멋대로 조세를 탕감해주거나 월권을 행하자 맹상군이 열을 매었다. 당시 맹상군은 모함을 받아 제나라 민왕의 의심을 받게되고 눈치차린 맹상군은 일단 설 땅으로 도피하지만 조세 탕감 받았던 백성이 맹상군의 무고를 주장하며 자결하자 재조사랬더니 모반한 적이 없었다. 재상자리를 떠나 이제 여례라는 진 나라 사람이 재상이되니 진과제를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위나라로 들어가 위의 재상이 되었다.
풍환은 별것도 없는 놈인데 빈객으로 처음 생선반찬이 없다. 수레가 없다. 집이없다 하며 불만을 할때마다 맹상군이 좋은 색실오 대접했으나 점 차 싸가지자 버럭화를 냈다. 안그래도 빈객먹닐 재정이 부족하자 풍환이 자기가 설땅에서 원금과 이자를 받겠다며 내려가자 그렇게하게 냅두었다. 설상가상 풍환은 고기로 잔치를 벌려 채무자를 모이게한다음 이자 받을 놈 에게는 받고 못받을 형편인자는 증서를 불태웠으니 맹상군은 꼭지가 돌아갔다. 풍환이 돌아와 하는말 어차피 못받는 사람은 깨끗이 포기하고 인심이라도 얻어야 할 것 아니냐라고 말하자 전문은 엄청 좋아했다. 오늘날도 파산 신청하면 탕감해 주는데 2300년전에도 그리했구나.
민왕이 재상에서 맹상군을 내쫓자 빈객이 모두 떠났다. 풍환만은 말을 빌려 진나라로가 진의 재상으로 맹상군을 추천하라고 부추기고 사신을 제로 보내라하자 진왕은 그렇게하였다. 풍완은 사신보다 먼저 제에 돌아와 똑같은 말을 입장만 박꾸워 제왕에게 말하며 진이 사신을 보내 맹사군을 데려가면 제에 좋을게 없고 진과제의 두 숫컷중 진이 남게될 것이라며 겁을주자 진 사신이 지짜오자 다시 맹상군을 재상으로 임명했다. 때마침 떠났던 빈객들이 다시돌아오자 맹상군이 이를 갈았다. 풍완은 참으라고 말하며 세상사 다 그런 것이라며 맹상군이 받아들이기를 청했다. 그 이후로 설 땅은 어중이 떠중이 별의 별놈들이 모여들어 사는 지역이 되었다. 태사공은 말한다 맹상군은 빈객을 좋아하여 스스로 즐겼다고 하였다. 풍환의 세상사 사람에 대한 인식은 적절하구나!
16장. 평원군.우경 열전
평원군 조승은 조나라 혜문왕 효성왕 때의 재상이다. 절름발이를 비웃은 첩 때문에 빈객이 떠나자 일년뒤 첩의 목을 베었다. 진이 조를 포위하자 조승운 초에 합종을 위해 떤난다 하지만 모수라는 사람을 무시한다 그래도 그자는 초나라에 도착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도 못하고 어부정 거리자 스스로 총항과 직접 대화하여 합종을 맺고 돌아온다. 평원군은 그의 능력에 감복하고 상객으로 삼는다.
공보문뱍의 어머니 이야기
공보문박이 노에서 벼슬하다 죽자 규방 여자 둘이 자살 하였다. 공보의 어머니가 울지도 않차 사람들이 물었다. 그럴 수 있느냐고. 하지만 어머니는 덕 있는자에게 다정하지 않고 부녀자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어서 그런 것이니 울지 않소 만약 이 어머니의 말이 부인에게서 나온다면 세상 사람들은 질투해서 울지 않는다 하겠지. 말은 같은 말인데 말하는 사람에 따라서 듣는 사람의 마음도 바뀐다는 내용이다. 적은 나라와 큰 나라가 같이 일을하면 잘될때는 큰 나라가 복을 받고 일이 잘 못되면 작은 나라가 화를 입는다.
17장. 위공자 열전
위나라 신릉군 무기
후영은 늙은 노인이며 문지기에 불과하나 공자가 그를 잘모시고 ㅜ히 대하자 위공자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겸손이 실제인지 시험해보았으나 별반 차이가 없자 저작거리에서 공자의 덕을 십분 말하며 존경했다. 나중 진이 신릉군 누이가 시집간 노나라를 포위하자 후영은 백정이었던 주발을 소개하고 여희의 도움으로 위나라 장수 진비를 속일 부절을 빼내어 진비의 군대를 인수 받고 진을 공격하여 노나라를 구했다. 이는 위에는 잘 못한 것이고 노에는 공을 세운일이라 신릉군은 자랑하지 않고 조에 머물렀다. 십년후 진이 위를 치자 위에서는 신릉군이 위로 돌아 오기를 간절히 원했고. 돌아와 진에 대항하니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지나자 진은 신릉군의 위세가 위왕 안휘를 능가한다는 소문을 퍼트려 그를 물러나게 만들고 그가 술독에 빠져 죽고나자 다시 위를쳐서 위를 멸망시켰다. 선비를 모신 맹상군. 평원군. 춘산군. 신릉군 중에 가장 으뜸은 대량사람 신릉군이라하여. 한고조는 경포를 제거하고 돌아오는 길에 제를 올렸다 한다.
18장. 춘신군 열전
초나라 황헐은 진에 사신으로 파견되었고 초 회왕이 진의 술수에 빠져 죽음을 당한 것을 알며 그의 아들 경양왕을 살리기위해 진 소왕에게 초와 연합하고 위한을 먼저 처야 한다는 글을 올려 소왕이 받아들인다.
황헐이 진에 볼모로 있는 초태자 완을 초로 돌려보내줄것을 올리자 진 재상 범저가 소왕에게 부탁하여 그리되고 완은 후에 초의 고열왕이된다. 그리고 황헐은 춘신군이 된다. 초왕이 아들이 없자 이월이란 자가 춘신군에게 동생을 소개하여 임신시킨 후 초왕과 결혼하고 아들을 낳아 태자 훗날 유왕이 되었는데 이는 진시황의 여불위 자식과 비슷하다. 이원은 결국 고열왕이 죽자 비밀이 누설될까 두려워 춘신군을 살해하였다. 태사공은 말한다 '마땅히 결단해야 항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된다'
춘신군은 주영의 말을 받아들여 이원을 먼저 죽였어야 했다.
19장. 범저.채택 열전
응후 범저는 위나라 사람으로 수고라는 사신과 제나라에 갔다. 제왕이 범저의 능력을 듣고 선물을 잔득 보내오자 수고는 범저가 위나라의 정보를 넘겨준 댓가로 받은 것이라 여기고 돌아와 위 재상에게 알려 범저는 몰매를 맞고 방석에 말려 버려 졌으나 죽은 척하다가 빠져나와 정안 ㅕㅇ의 도움으로 장록이라 개명하고 숨어 살았다. 진나라 사신 왕계가 위에 왔다가 정안평으로 부터 범저를 소개 받고 보니 능력이 있는자라 진으로 데려갔다. 가는 중 진의 재상 양후를 보게되었는데 범저는 그의 위세와 권력상 숨어 있는 것이 좋다 생각하고 숨었는데 마침 양후는 유세가를 혹시 데려오면 죽여버릴 거라 엄포 놓고 지나갔다. 범저가 양후가 다시 돌아 올 것을 예견하고 멀리 달아나자 진짜 다시 돌아와 짐을 칼로 찔러 보았다. 왕계는 소왕에게 범저를 소개 했으나 탐탁치 않게 받아들이자 범조는 나아가 1년을 잠자코 지냈다. 드디어 왕에게 자신의 유세시안을 글로 올리자 소왕이 만나 보기로한다. 궁으로 향한 범저는 일부로 환관들이 드나드는 문으로 가다가 실갱이가 붙자 소왕을 못본체 하며 환관에게 "진에 왕이 있오? 나는 태후와 양후만을 아오." 하자 소왕이 깨닫고 안으로 모셔 무릎을 꿇고 세번이나 부탁하나 글세요 글세요만 외친다. 이유는 왕의 마음을 아직 해아리지 못한 연유 였다. 범저는 문왕 무왕을 도운 강태공. 오나라 합려를 도운 오저서. 은 주왕 포정에 조선으로건 기자 등을 예시하며 간신 양후를 극복하여 선군정치를 항 것과 그런 도움이 되겠다고 유세한다. 한위를 독려하여 멀리 제를치자는 양후의 계책은 꽝이라며 거구로 멀리 제와 친교하여 가까운 한위 부터 치라 간언한다. 그는 재상이 되었다.
또한 양후 태후 고릉군 화양군 경양군의 권세가 너무 높아 왕권이 눌려 있다는 표현으로 열매가 많으면 사지가 부러진다고 표현했고. 정권을 맡은 신하가 현명하고 능력있는 자를 시기하여 아랫 사람을 누르고 윗 사람을 가리며 사사로운 욕심만 채워 군주를 위한 계책을 꾀하지 않건만 군주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므로 그들을 더욱 높여 결국 나라를 찬탈 할 지도 모르는 자경에 이르렀다고 보고하자 소왕은 즉시 그들을 제거했다. 수고가 제 사신으로 진을 찾자 범저는 장록이란 이름으로 활동했기에 변장하고 수고를 만난다. 수고는 그의 딱한 현실을 보고 옷을 주어 입힌다. 하지만 범저는 지난날 자기를 위태롭게 만든 수고의 죄를 묻고 안갑픔을 한다 그리고 위제의 목을 거저오라한다 위제는 두려워 위나라에서 조나라로 도망가고 평원군이 숨겨주나 진 소왕은 평원군을 불러 숨겨주면 너도 가만 안둘거라 위협하자 위제는 스스로 자결하고 조 신릉군은 위제 목을 범저에게 보낸다. 범저가 출세하는데 도움을 준 양계와 장안평을 소왕에게 추천하여 봉록과 작위를 받게하나 그들의 욕심은 끝니 없어 양계는 자결하고 장안평은 조나라로 도망한다.
채택은 연나라 사람으로 관상을 보니 사십년 잘쓰인다하여 여러나라에 유세하였자만 미역먹고 진나라 응후 범저를 만나게되었다. 구는 아무리 훌륭한 신하가 있어도 군주가 똑바라야 빛을 본다며 군주의 현명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하였다.
웅후애게는 최고의 자리에 이르렀을 때 본연의 도리로 돌아오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지 않으며 절재할 줄 모르는데서 생기는 재앙을 초 오기 월 문종 진 백기 진 상앙을 들어가며 말한다. 월의 범려를 보고 배우라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는자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 하였다. 욕심이 그칠 줄 모르면 하고자하는 바를 잃고 가지고 있으며 만족 할 줄 모르면 있던 것마져 잃는다. 응후는 채택을 소왕에게 천거하고 재상에서 물러 났고 채택은 재산이되었다. 그후 소왕 효문왕 장양왕 시왕 까지 모셨으면 연나라 사신으로가 태자 단을 볼모로 진으로 데려왔다. 태사공은 응후 범저와 채택은 대단한 변사요 유세가라 칭찬하고 그들이 타국에서 쓰이지 않고 진나라에서 쓰임은 타국이 그만큼 약했기 때문이라하고 이 두사람이 어련운 시기를 떨치고 일어났기 때문에 존귀하게 쓰일 수 있었다 말한다.
20. 악의 열전
악의는 위나라 출신으로 제나라 민왕이 연과 조위한을 공격하여 스스로 제라 하자 연왕 소왕은 선비를 찾다 악의를 만났고 악의는 조위한과 연합하여 제를 치고 칠십개의 성을 빼았었다. 얼마후 연 소왕이 죽고 혜왕이 뒤를 이었으마 악의와 사이가 않좋았다. 이를 안 제는 간첩을 보내 악의가 제의 두성을 정복하지 않는 이유가 연에서 쫓겨나면 제왕이 되려고 질질 전쟁을 끌고 있다고 모험하자 혜왕은 악의를 불러들였으나 악의는 응하지 않고 조나라로 망명했다. 조는 악의를 높이 사니 제와 연 왕이 의아해 했다. 기곱으로 억위 대신 장군을 바꾼 혜왕은 제에서 전단에게 패하고 그간 빼어온 땅 뿐만아니라 연땅마져 잃개되자 조에 있는 악의에게 서한을 보내 오해을 풀고 다시돌아오라고 하지만 악의는 보연왕서라는 답장을 보낸다. 개략 내용은 부차애게 죽음을 명 받고 죽어 강물에 버려지는이 조나라로 옮겨가 살아 남겠다는 악의의 신념을 담은 내용이다. 즉 주군이 바뀌면 사정이 달라지는 현실을 악의는 알고 있던 것이다. 악의는 조에서 죽었다. 악의 아들 악간은 연나라 장군이되어 조를 쳤으나 조나라 염파 장군이 이를 물리치자 악간은 조나라에서 숨어 살았다.
21장. 염파.인상여 열전
인상여는 조나라 사람이다. 조나라에는 예전 초나라의 보석 화씨벽이 있었다. 초나라 변화는 보옥을 얻고 초 여왕에게 바쳤으나 감정사가 돌이라하여 발목이 잘렸고 무왕이 서자 또 바쳤으나 돌이라하여 나머지한발 이 잘렸고. 문왕이 서자 초산에서 울기만 하였다 문왕은 보옥을 가져다 화씨벽을 얻었다. 진 소왕이 성열개와 화씨벽을 바꾸자 하자 조 혜문왕은 어쩔줄 몰라하는데 환관 무현이 인상여의 용감성과 지혜를 격은바 소개하고 그를 보낸다. 무현은 연나라왕의 꼬득임에 연으로 도망하여나 인상여늬 상담을 받고 조에 남은 사람이었다. 진에 도착한 인상여는 진왕이 성을 내줄리 없자 화씨벽에 흠집을 말하며 돌려 받은뒤 깨던질 자세로 귀한 보석을 목욕배계후 받으라하며 시간을 끈 후 사인을 시켜 조로 돌려보냈고 이를 안 소왕은 인상여를 죽이려다 그래 봤자 별 이득이 없는 것을 알고 조로 돌려 보냈다. 결국 진은 조에 성을 주지 않았고 조는 보석을 주지 않아도되었다. 진이 조에 처들어와 민지에서 진왕이 조완과 협상을 요청 했다. 조왕은 인상여를 댈고 갔다.
진왕이 조왕에게 거문고를 쳐달아고하였고 그렇게하자 진 사관이 모일모시 조왕이 진왕을 위하여 거문고를 켰다 라고 기록 했다. 이를 본 인상여가 진왕에게 조왕을 위해 분부(북)를 쳐달아고 했다. 진왕과 그 하수인들은 그를 위협하고자 했으나 인상여가 눈을 부릎뜨니 어쩔 수 없이 물러 났고 진왕이 마지 못해 한번 두두리자 인상여는 조 서관을 불러 모일모시 진왕이 조왕을 위해 분부를 두들겼다 라고 적게 하였다. 이일로 인상여가 상경까지 오르자 장군 염파는 그를 시기하여 톡톡히 창피를 주기로 마음 먹었는데 인상여믄 그걸 눈치 채고 계속 염차을 피했다. 인상여 근친이 왜 피하기만 하느냐고 묻자 진왕과 염차중 누가도 무서운지 묻자 진왕 이라했다. 인상여는 나는 진왕에게도 호통친 사람이다 하물며 내가 염차가 무서워 그리 했겠느냐 하며 집안 호랑이 둘이 싸우면 누가 좋아 하겠는가? 물으니 이 소식을 들은 염차는 자기의 잘 못을 뉘우치고 인상여에게 사죄했다. 세리 조사가 평원군의 식솔 아홉을 조세회피좌로 살해하자 평원군이 발근하였으나 있는 놈이 도 잘해야 제후국이 조나라를 넘보지 않는다는 말에 참고 인정했다. 그 조사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국세청장으로 승진 하였다.
혜성왕이 죽고 효성왕이 등극하자 잔이 한단을 포위하며 조를 공격하려하자 왕은 진의 헛소문 조괄이 두려워 공격하기어렵단 말을 믿고 염파를 제치고 조사 장군의 아들 조괄을 내보냈다. 그러자 조괄 어머니는 절대 않된다며 아비만한 자식이 못된다며 말였다 허지만 종항은 밀어 부쳤고 장군이된 조괄은 자기 멋대로 장수들을 바꾼뒤 전쟁에 나갔다 진의 백기는 조군의 물자공급을 끊고 몰아부치자 조괄의 병사들은 굶어 죽거나 사기가 저하돠었고 결국 장평 싸움에서 조군 45만이 생매장 당했다.
염파는 효성왕이 죽고 도양왕이 악승을 이뻐하자 열 받아 악승을 공격하고 위나라로 달아나 버렸다. 그는 초에서도 스카웃제의가 있었지만 거절하고 죽을 때 그래도 조를 위해 싸우다 주고 싶다며 죽었다. 태사공은 인상여의 용기와 지혜를 높이 산다며 죽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라 말했다.
22장. 전단 열전
연나라 악의가 처들어와 제는 거와 즉묵 두 성벆에 없었다. 죽묵으로 도망한 전단은 집안 마차바퀴에 철을 돌려 안전하게 피난 할 수 있었다. 성안 사람들이 그를 장군으로 내세워 연과 대치하게 하였고 연은 소왕이 죽자 혜왕은 악의를 몰아내고 기겁으로 바꾸웠다. 이시좀 거의 민왕은 초 장수에게 죽음을 당했고 양왕이 물려 받았다. 전단은 왕이 되려한다는 간계로 악의를 몰아냈고 연나라 군사는 조 나라 사람의 코를 베고 성밖의 조상묘를 연나라 순사들이 회손하면 제가 망한다는 소문을 퍼트려 연 군사들이 그렇게 할 수록 성안 제 백성의 심기를 악벋치게하여 전투 서기를 올렸고 소1000마리 뿔에 칼을 매고 꼬리에 기름붙고 불 붙여 성박으로 내몰아 연군을 혼비 백산하게한 후 점차 모든 성을 되 첮았다. 양왕은 전단을 안평군에 봉했다. 태사공은 전단의 용병 술을 높이 평가 했다.
23. 노중련.추양 열전
노중련은 제나라 선비로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장평전투 이후 한단을 포위하였을시 조나라에 있었다. 위나라 객장군 신원연이 조나라 평원군에게 포위를 풀게하기 위해서는 조나라 왕이 진나라 왕을 '제'라 부르고 화친하기를 제안했다. 이소리를 들은 노중련은 평원군과 신원연에게 찾아가 간괴와 비정함으로 전쟁을 일삼는 진나라 왕을 '제'라 칭할 수 있느냐며 꾸짖는다. 이와 동시에 주변 제후국들의 원병 도움으로 진나라가 포위를 풀고 물러 갔다. 이에 대한 공로로 조나라 평원군이 노중련에게 봉토와 상금으로 답례하려하자 노중련은 "천하의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사람의 걱정과 재앙을 덜어주고 댓가를 받지 않기 때문이며 만일 보상을 받는다면 이는 장사꾼에 불과하다"라고 하며 받지 않았다.
제나라 땅 요성을 점거한 연나라 장수에게 노중련은 전쟁을 그만 둘 것을 편지로 전하면서 연나라로 돌아가 조나라에게 공격 받고 있는 연나라 왕에게 충성을 다하던지 아니면 제나라에 귀화하여 봉록과 관직을 받고 편히 살아 봄이 어떠냐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편지를 받아본 연나라 장수는 연나라에 돌아가도 불충하단 이유로 벌을 받게될까 걱정하고 제나라에 귀화해도 그동안 제나라 백성에게 원한산 일이 많았던 사유로 자결을 하고 만다. 결국 노중련의 편지는 연나라 장수를 스스로 자결하게 만들었고 제나라 장수 전단이 요성을 되찾는데 수월하게 되었다. 이에 전단이 노중련을 제나라 왕에게 큰 공로와 포상을 내려 달라고 그를 추천하자 노중련은 "나는 부귀로우면서 남에게 얽매여 사느니 차라리 가난할 망정 세상을 가볍게 내맘대로 살리라"라고 말하고 받지 않았다.
추양은 양나라에서 측근의 모함으로 감옥에 갖쳤다. 그는 양왕에게 충신이 진실을 말해도 군주가 오해하여 내친 일들을 말하며 어여삐 봐 줄 것을 원했다. "젊은 머리 파뿌리되도록 사귀었어도 새로 사귄 듯 한 이가 있고 길에서 우연히 만나 잠깐 이야기 하고도 오래 사귄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이유는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어느냐 모르느냐에 달렸다" 라고 말했다. 하쪽말만 들으면 간사한 일이 샹기고. 한사람에게 모든 것을 멑기면 혼란이 일어납니다.
추양의 상소는 억울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힘이되며 간신에 둘러쌓인 리더에겐 새로운 기회를 제시하는 글이로다.
24장. 굴원. 가생 열전
굴원은 초 사람으로 성은 평이고 회왕때 사람이다. 근상이라는 자가 굴원을 시기하여 왕의 명으로 법을 만들던 이소가 자랑질만 한다고 아뢰어 왕이 굴원을 멀리하자 왕이 못난 간신을 가까이하고 아첨하는 이를 구분 못하며 불의한 놈을 알아보지 못하고 올곧은 이를 쓰지 않음에 '걱정스런일을 만나다' 라는 이소를 지었다. 진 장의가 제와 초의 합종을 깨뜨리니 굴원은 반대를한다. 진은 초에 땅을 떼주기로 했으나 지키지 않자 회왕은 장의를 죽이게 초로보내라 통지하는데 장의는 직접 초로 와서 근상을 통해 정수를 소개 벋고 회왕을 꼬득여 진으로 유유히 돌아간다. 진 혜왕이 죽고 소왕이 등극하여 초회왕을 초대하니 굴원은 가지 말라랬지만 간신들은 찬성하여 진에 갔다가 푸대접 받고 거기서 죽게되었다. 회왕은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지 못해 안으로는 정수에게 밖으로는 장의에게 농락당하고 굴원은 멀리하고 간신 영윤 자란을 믿었다. 고로 군대가 꺽기고 땅도 잃고 진나라에서 객사하여 천하 웃음거리가 되었다. 역경에 왕이 현명하면 모든 사람이 복을 받는다 했으나 초는 그러지 못하였다 굴원이 말하자 자란이 회왕 아들 경영왕이게 고자질해 굴원은 결국 쫓겨났다.
강가의 어부가 굴원 얼굴이 않 좋은 이유를 묻자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홀로 깨어 있어 쫓겨났소"라고 하녔다. 머리감고 갓끈을 씻고 모욕하고 옷의 티를 털고 입지 누가 그냥 입겠소. 멱아수에 몸을던져 죽었다. 100년뒤 가생이 글을지어 강물에 던져 그를 애도 하였다. 애닭타 굴원이여 그대는 다른 유세가처럼 타국으로 떠나지 못했는가?
가생은 효문제때 신동으로 조기 발탁되어 한의 박사오 있으면서 관직과 제도를 먾이 새롭게하였다. 나이든 신료들이 그를 시기하여 모함을허저 문재도 동조하여 지방관리오 좌천시키자 떠나면서 상수에서 굴원 애도시를 지었다. 준마도 고삐를 매면 개나다름 없고 배를 삼킬 만한 큰 물고기도 물없는 땅에서는 땅강아지와 개미에게 제압당하는구나!
25. 여불위 열전
송항의 태자 안국군(효문왕)은 자식이 없는 화양부인을 후처로 두고 이뻐하였다. 안국군의 둘째아들 자초(장영왕)는 조나라에 볼모로 가 있었고 그의 친모하희는 인기가 없었다. 여불위는 자초를 보고 귀함을 알고 그에 기대 자기 집안이 높여지리라 기대하고 자초이게 화양부인에게 잘 보이고 양아들이되면 후사가 자초에세 올 것이라며 지원을 하였고 화양부인도 자초가 잘해주자 안국군에게 후사를 부탁하여 일이 성사되었다. 자초가 여불위의 첩을 보고 반해 달라고하자 언짠었지만 장래를 생각해 저기 자식을 임신한 첩을 자초에게 주었고 그로 난 아들이 정(시황제)다. 안국군 1년 장양왕은 3년 제위후 일직 즉으니 정이 왕에오르고 여불위는 상국이되었다. 사사로이 태후는 여불위와 정을 통했다. 여불위는 반객을 모으고 여씨춘추를 지었다. 시황이 장성하며 어머니의 부정을 알게되자 여불위는 한발 빼서 힘있는 노애를 환관처롬 속여 태후의 정욕을 대응하게 했다.
노애의 애가 배오르자 멀리가서 살겠다며 나가살고 그때마다 노애는 태후의 내시로 쫒아 다니고 아들을 낳자 역모를 꾸미다 정에게 발각되 노애는 참수당하고 이를 꾸민 여불휘는 파직당해 하남으로 보내나 따르던 빈객들이 여씨에게 몰리자 정은 편지로 그대가 진에 한일이 뭐길래 중부라 불리냐며 노여워하고 촉으로 옮겨가라 하자 조여오는 옥죄에 스스로 독주를 들고 자결하고만다.
26장. 자객 열전
노-조말이 제 환공을.
오-전제가 오왕 요를.
진-예양이 조 양자를.
지-섭정이 한 재상 협루를.
연-형가가 진왕 정을 죽이려한 것. 이중 조말과 형가여 말로 의협심에 일어난 자객이다.
노와 제가 전쟁중 조말은 세번 연패해도 장공이 장군으로 인정하자 노 장공과 제 환공이 협상하는 장소에서 환공을 위협하여 땅을 돌려주지 않으면 죽인다고 하자. 돌려주겠다고 하고 풀려난뒤 번복하자 관중이 한번 약속은 지켜야 한다하여 환공이 빼앗은 노 땅을 돌려 주었다는 이야기.
오나라 전제는 오자서가 공저광(합려)에게 사촌인 요왕을 생선속에 칼을 숨겨 죽게한 저객이다. 오자서는 초를 치자고 서둘다 광의 왕욕심을 알아채고 전제를 광애게 소개 했으며 광은 아버지가 그 형제들에게 물려준 왕권을 둘째 삼촌의 아들 요에게 물려주자 앙심을 품었다.
진의 중앙씨와 범씨를 모시던 예양이 탐탁지 않자 지백을 모시기로 했다. 지백은 예양을 선비로 대해주었다. 어느날 조양자와 지백의 다툼으로 지백이 죽자 조양저눈 지백의 해골로 술잔을 만들어 마시기 꺼지 한다. 예양은 주군의 원한을 복수하기위해 조양자의 화장실 일군으로 가장하고 조양자를 죽이려다 들통나 접혔다. "선비는 저기를 알아 주는 이를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단장한다"허저 그의 의로움을 생각해 살려준다. 하지만 예양은 계속 변장하여 조양자를 다리 밑에 숨어 기다리다 말이 놀라자 영자는 지백임을 눈치채고 주군이 죽었는데도 이리 지겹게 복수 하려는 뜻이 뭐요 라며 그의 의협심을 높이서자 예양은 당신의 옷이라도 베고 싶다 요청하자 조양자는 벗어준다. 예양은 옷을 세번 베고 스스로 자결 하였다.
한나라의 엄중자와 재상 협루는 앙숙관계다. 엄중자가 자객을 찾다 백정 섭정을 만나게되고 후하게 대접하고 부탁하자 그는 어머니와 누이를 봉양키위해 못한다고 하다가 어머니가 돌아 가시고 누이도 시집을 가자 자기를 알아봐준 엄중자를 찾아가 일을 하겠다하고 협루를 살해한다. 그리고 자기 얼굴가죽을 벗기고 창자를 드러내 자결한다. 한나라에서 시장 바닦에 누군지 찿기위해 시체를 내어놓차 누이 섭영이 이는 보너마나 자기 동생이라고 말하고 동생이 저기를 연류 시키려하지 않은 남매애를 느껴 스스로 옆에서 같이 죽는다.
연나라 태자 단이 진에 볼모로 있다가 푸대접 받자 달아나 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진에 복수하기위해 전광을 불러 자객을 찾자 형가를 소개하였다. 형사는 술 책 노래등 흥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단이 혹 비밀이 누설돨까 염려하자 전광운 형가를 소개한 후 스스로 자결하였다. 당시 진나라 번 장군이 진을 탈출하여 연에 망명중이었으나 진은 번을 높은 현상금에 걸고 잡으려 혈안이었다. 형가는 번장군을 찾아가 당시의 목을 내 놓아 달라고 설득하여 그의 목을 갖고 진으로 독칼을 숨기고 진으로 출발했다.
진왕앞에 번의 목과 지도를 펼치고 단검으로 진왕을 찌르지 못라고 결국 잡혀 죽게되었다. 진왕은 혼비 백산하여 칼도 못 뽑고 기둥 사이로 도망 다니느라 정신ㄴ 없었다. 진왕은 노하여 당장 연을 치고 연 희왕과 태자 단을 잡아 모두 죽였으나 고점리 만큼은 축을 잘켜 눈을 멀게하고 왕 가까이 두었으나 그 역시 진왕을 납을 넣고 축으로 내리쳤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죽었다.
27장. 이사 열전
초 나라 출신으로 젊어 변소쥐와 창고쥐를 보고 사람의 어질고 천함은 이런 쥐와 같이 자기가 처한 환경에 달렸을 뿐이라 하고 순저의 문하생으로 있다 칠웅의 강자 진에 유세하기로 결심하고 나와 여불워를 찾아가 빈객으로 있다 진왕에게 천하 통일을 위한 유세를 하자 진왕은 그를 객경으로 삼았다.
누군가 진외의 유세객은 진을 위하지ㅜ않고 그 출신국을 위해 일한다고ㅠ하자 이사는 그 반론을 올려 진왕에게 이쁨 받고 그 후로 이십년지나 전국을 통일하고 무기를 녹여 농기구로 만들고 제휴를 봉하지 않는 군현제를 실시하고 도량형을 통일 하고 쓸데 없는 온고이지ㅛㅣㄴ으로 국정이 동요되지 않토록, 선비를 키우지 못하게 분서를 단행 했다.
부귀영화를 얻은 이사는 잃을 것이 걱정되었다.
시황이 순행중 사구에서 죽게되자 조서를 써 왕위를 부소에게 준다하였으나 환관 조고가 호해로 바꾸고 승상 이사를 꼬드겨 인정하게 만들었다. 부소는 자결허고 몽염은 잡혀 죽음을 당했다.
이사는 환관의 말에 유혹되 일장춘몽에 불과한 영덜을 유지하고자 동의한다.
호햐가 왕위에 오르고 통치허저 이사는 법과술을 강해게 할 것을 주문하고 조고는 신하를 직접 만나지 말고 글로 낭중령인 자신을 통해 보고하게 만들었다. 이사가 호해를 먼나길 원하자 조고는 일부로 연회석애서 만날 수 있게햐 호해가 승상에게 짜증나게 만든다음 이사거 모함중이러고 언질하여 호해의 눈밖에 나게 조작한다. 승상 이사는 호해에게 조고는 역적을 꾀하는 간신이라 작설적으로 글을 올리나 호해는 무슨 가당치도 않는 소리냐며 조고를 의심하지 말라 타일른다. 콩깍지가 씌아면 이렇게된다. 이사는 다시 글을 올리나 호햐는 아사가 조고를 해할 까봐 이런 사실을 조고에게 말하자 한 술 더떠 조고는 자기만 죽으면 이사는 전상처럼 모반할 것이라 하자 호해는 조고에게 심문하라 넘긴다. 이사는 하걸의 관용봉. 은주의 비간 오부차의 오저서를 비교하며 충신의 간언에도 도리를 모르는 군주에게 아무런 계책이 없다 한탄했다.
옥중에서도 공을 늘어 놓는 상소를 올리자 조고는 옶애버리고 번역을 토로 할때까지 고문하여 결국 이실직고를 받은 후 시장에서 그의 섬족 모둘의 허릴 자른다.
바보 같은 이사 그렇게도 몰랐단 말인가. 간신이 어떤지 욕심이 어떤 결과를 부르는지?....조고는 호해에게 사슴을 말이라하여 자신의 권력을 확인 했다. 망이궁으로 호해를 보내고 미치게한 후 산동 도적이 왔다며 겁주고 스스로 자결하게 하고 옥쇄를 가졌으나 주변 신하가 냉하게 받아들이자 자영을 불러 왕을 잊게했다 하지만 자영이 그를 암살해버렸다. 자영은 항우에게 목베어졌다.
28장. 몽염 열전
대대로 진 장군 출신가문이며 몽염과 그의 형재 몽의가 있다 몽의가 환관 조고의 잘못으로 극형에 처하려하자 시황이 봐주었는데 시황이 죽고 몽염 형제를 미워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차례로 부소를 자결하게 한다음 몽 형제를 죽이니 몽염이 나중 죽으면서 잘 못도 없이 죽는 것이 억울하지만 만히 장성을 쌓으며 많은 사람을 함들게허고 지맥을 끊어 놓아 이리되었구나 하며 한탄하고 죽었다.
29장. 장이. 진여 열전
처음엔 친구 장이가 연장자. 거록성 전투에서 장이가 잔여에세 도움을 청했으나 와면하자 사이가 나빠짐. 진여는 조나라에 들어가고 장의는 패하여 초로 갈려다 지인의 천운을 보고 한 유방에게 감. 유방이 진여에게 대량 공격에 동와 달라하라 장이의 목을 베면 동와 주겠다고하여 가짜 머리를 보내 도움을 받고 나중 속은 것을 알고 싸웠다. 진여가 패해 장의가 승리함. 장의는 유방딸(노원공주) 과 결혼하여 사위가되고 조를 통치함. 장이의 산하 중 유방의 건방짐에 모반하려다 잡혀 고문을 당했지만 장이의 무관을 주장하여 장의는 무탈하였다. 태사공은 말한다. 장의와 진여는 어렵고 빈천할 때는 좋은 관계였으나 권력과 부가 이루워지자 서로 다투고 원수가 되었다고.
30장. 위표.팽월 열전
위표 위의 후예로 초 항우덕에 함곡관전투를 인정 받고 위왕이되었으나 삼진을 치고 팽성을 공격한 유방편에 섰다가 유방이 패하자 다시 유방에게 반기를 들었고 역생이 회유 하려했지만 잘되지 않차 한신을 보내 죽여버렸다.
나라가 어수선하자 도적놈들이 팽월보고대장을 하라하였다. 무리즁 약속시간에 늦는 놈은 목베가로 했는데 다들 설마 했다. 팽월은 약속은 약속이라며 다 죽일 수는 없으니 가장 늦은 놈을 목베 제를 올렸다. 팽월은 게릴라전을 하여 초 항우를 괴롭히고 물자 수송을 끊고허여 유방에게 이쁨받고 위표 뒤를 이어 위왕이 되었으나 한 고조의 의심을 사다가 여태후가 모반을 꾀하는 인물은 결국 죽여야 뒤끝이 없다 말허자 고조는 팽월을 죽였다.
31장. 경포 열전
경포는 얼굴에 묵형을 당했고 어려서 형벌을 벋고 왕이 된다는 관상을 듣고 좋아했다. 진승이 난을 일으키자 초 항량의 선발대가되어 항상 승리하자 항우는 구강왕에 봉했다. 회왕 의제를 살해한 것도 항우가 시켜 경포의 장수가 실행했다.
유방이 팽성을 공격할때 항우는 제와 전쟁 중이라 경포에게 도울 것을 명했으나 경포는 실행하지 않고 두나라를 눈치 보고 있었다. 팽성에서 도망나와 쫓기는 상황의 유방은 수하를 경포에게 보내 한을 도울 것을 권고하기보다. 장래 누가 최종 승리 할 것인지 유세하여 경포가 한을 따를 것을 회유하는 자리에 초 사신이 있는 상태에서 하여 빼도밖도 못하게하니 성공하였다. 한으로 오자 유방이 탐탁치 않게 발을 씻으며 대하니 후회했다 자기 침소가 유방과 별반 차이 없자 다시 좋아했다. 회남왕에 봉해졌다. 한신이 죽음을 당하고 팽월이 절여저 제후에게 배달되자 경포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경포 첩이 비혁과 불륜이 있자 잡아 죽이려하였다 이에 비혁은 경포가 모반하려한다며 거짓으로 고발했고 소하는 유방에게 경포는 그런 인물이 못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포는 두려워 결국 반란하였으나 유방은 영포를 끝내 추적하여 죽게 만들었다. 태사공은 말한다 영포가 거록 전투후 초나라에 있을때 구덩이에 파묻어 진순을 죽일때 항우위 앞잡이로 나섰으니 죽음도 아깝지 않은 놈이라고.
32장. 회음후 열전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다
소하가 달아난 한신을 쫓아간 이유
천하는 마음을 얻는자의 몫이다.
싸움에 진 장우는 무용을 말하지 않는다.
과욕은 화를 부른다.
들짐긍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활을 치운다. 모반을 계획하였다가 그의 종이 고발 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 갔고 괴통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자 고조는 괴통을 잡아다 사실여부를 묻자 사실이라 말한다. 그러며 나의 주군은 한신이지 고조 유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하자 봐주어 살렸다.
아녀자 여태후에게 속은 것도 운명이다.
한신의 이야기는 많은데 여기 짧게 적는 이유는 한신에 대해 내가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33장 한신.노관 열전
여기의 한신은 또다른 자의 한신이다. 노관은 유방과 같은 날 태어난 동향인데. 유씨가 아닌 사람이 제후가 된 것은 드문일이다.
한땅의 한신 대땅의 진희 연땅의 노관이 모반하고 흉노 편에 선건 고조의 한신 팽월 경포의 탄압이 자기에게도 마찬가지로 다가오리라 두려웠기 때문이니라.
34장. 전담 열전
제나라 전담 전영 전횡은 사촌 형제 지간으로 그들의 용맹과 형제간 의는 마지막왕 전횡의 빈객이 전횡의 자결에 따라 모두 죽음으로 쫓는 상황을 봐도 알만하다. 전담은 초를 도와 장한과 싸움하였고 그가 죽자 다시 전영이 왕을 이어 한신이 공격하자 한 사신 역이기를 삶아 죽이고 싸우다 죽고 그의 동생 전횡이 끝까지 싸우다 바닷가 섬으로 물러났으나 고조가 용서하고 제후로 삼고자 낙양으로 불렀으나 중간에 자결하여 목만 고조에게 배달되었다. 전횡의 빈객들도 오백명이나 따라 죽었으니 그의 역량이 대단 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35장. 번.역.등.관 열전
번쾌. 역상. 하후영. 관영이라는 한초 개국 공신이야기
유방의 동서가 되며 패현에서 개잡는 일을 하였다. 전쟁에서 항상 선두에 섯고 한의 통일후 한신 팽월 경초 노관 진여의 반란을 모두 진압하였다. 나중 모함을 받아 고조로 부터 진평이 명을 받아 잡아오다 고조가 죽자 태후에게 고조가 시킨일이지 내가 한일이 어니라며 언릉 풀어주었다.
하후영은 마부로 마차를 잘 몰았고 유방이 후영을 상하게한 죄로 벌을 받게되자 그런 일이 없다고하여 유방을 구해줬다. 팽성에서패하고 유방이 도망갈때 아들 영과 노원공주를 마차에서 떨어뜨리자 하후영이 그럴 수 없다며 끝까지 지켜 살렸다.
관영은 비단 장수 였다가 한의 장군이 되고 한신 수하 장군으로 제를 쳐 공을 세우고 해하에서 항우를 죽이고 고조가 황제가된후 모반저를 공격 할때마다 공을 세웠다. 여태후 일족을 몰아내고 진평과 함께 효문제를 등극 시켰다.
태사공이 패현을 찾아 물으니 초기 고향 공신들은 파라가 소꼬리에 붙어 천리을 가듯이 한 고조를 만나 천하애 이름을 날리고 그 자식들에게 까지 은덕이 이어질 줄 오찌 알았을까? 했다.
36장. 장승상 열전
장창;
한신을 도와 진여를 사로잡고 소하의 신임을 받아 조정의 재정담당을 충실하게 맞았다.
주창;
임오는 패현에서 여후가 옥살이 할때 잘봐주었고, 주창은 한고조가 척희의 아들 여희를 세자로 올리려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대했다. 여희가 조나라 왕으로 있을 때 고조의 부탁으로 조나라 재상으로 있으면서 의를 지켰다. 여후에게 좋은 평도 받았으나 여희를 해치려는 여태후에게서 여희를 보호하여 고조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37장. 역생 육고 열전
역생; (역이기)
주변 사람으로부터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선비를 업신여기는 유방이 대업을 이룰 인재라는 것을 알아보고 유방을 만나기로 한 후 유방이 발을 씻는 태도로 자기를 맞는 것에 선비에 대한 예절이 아니라며 유방에게 일침을 가했다. 곡식창인 오창의 중요성을 알리고, 제나라 전광에게 항우와 유방을 비교하며 유방에게 항복하라는 협상을 하고 성공하였으나 한신이 군대를 몰고 제나라를 공격하는 바람에 간첩으로 몰려 제나라 전광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육고;
육생은 유방의 사자이었다. 남월 나라 왕 위타를 방문하여 반역 하지 말고 한고조를 섬기라 훈계하여 성공하였고. 한고조가 말을타고 성업을 이룬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시경 서경을 무시하자 "말등에 올라 천하를 얻었다하여 말등에 올라선체 다스릴 수는 없다"고 말하며 문무의 적절한 배합이 나라의 보존 방법임을 강조하였다. 아들 다섯이 있는데 재산을 두고 싸울까봐 200금씩 나눠주고 본인은 보검과 수레와 말 시종을 이끌고 아들집을 열흘씩 묵어가며 살다가 죽게되는 장소에서 그 아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준다하여 자식간 재산 싸움이 나지 안토록 하였고, 여후가 주도하는 여씨 외척을 몰아 내기위해 진평에게 무장, 특히 주발을 잘 아울러 민심을 모아 여후를 몰아내고 효문제를 세우는데 지대한 공헌을하였다.
38장. 부.근.괴성 열전
한고조를 보필하여 무탈하게 공을 세운 부관, 근훕,주설 세명의 공적을 기록했으나 특별한 내용은 없이 전장에서의 공적과 포상만을 나열했다.
39장. 유경.숙손통 열전
유경;
고조의 패권에의한 도읍과 주나라 덕치에 의한 도읍 낙양을 같은 선에서 바라 볼 수없다며 옳은 소릴하고. 흉노족 섬멸은 불가하니 오히려 사둔관계를 맺어 다스리심이 좋다고 고조에게 청한다. 흉노를 치러 출정하여 포위되었다 빠져나온 유방은 유정의 옳음에 공감하며 따르게되었다.
숙손통;
진나라 호해의 폭정에서 일단 살아 남기위해선 진승의난이 반란이 아니라 도적에 불과하다 말하여 신료들로 부터 아첨을 떤다는 비난을 받았고 항량에게 투항하고 후 다시 유방에게로 투항한 숙손통. 그는 다시 유방에게 투항 후 선비를 배제하고 건달과 양아치들을 천거해 또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가 유방의 황제권이 안정되자 모든 공로를 선비에게 돌리는 절차를 시행한다. 이는 너무 곧으면 부러지므로 본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며 형세를 보고 변화에 응하면서 자기의 의도대로 일을 처리해 나가는 그의 노련함을 우리에게 깨우치게한다.
40장. 계포.난포 열전
계포;
의리의 사나이 하지만 항우 편에서 유방을 괴롭혀 고조가 패업을 이룬 후 현상수배하였으나 주가가 하우영에게 부탁에 자기 군주를위해 싸운 장수는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다한 것이라 설득하고 하우영이 유방을 설득하여 계포를 용서하고 낭중으로 임명했다.
이후 여후가 집권하여 흉노를 치기위한 논의중 번쾌가 십만이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며 아부를 떨자 고조도 사십만으로도 어려움을 당했고 진 멸망도 흉노와의 만리장성 축조로 인심을 잃고 망했는데 똥폼만 있어 아부만 떠는 번쾌를 죽여야 한다고 하자 여태후는 두번 다시 흉노 정벌을 논하지 않았다.
문효제때 황제의 부름을 받은 계포가 한동안 추가 명이 없자 누군가의 칭찬에 불렀다가 누군가의 비난에 다시 돌려 보냄은 폐하의 식견을 의심할까 두렵다며 돌아가버렸다.
난포;
팽월과 절친이었으며 팽월이 모반한다는 이유로 고조에게 죽음을 당하자 팽월의 시신을 거두는자 또한 반역으로 처리한다 공표가 있음에도 팽월의 시신을 거둔 죽음을 무릎쓰고도 의를 행하는 의리의 사나이.
41장. 원앙.조조 열전
원앙;
강직한 성품으로 간언을 일삼아 강후주발 환관조동 조조등 정적이 많았으나 결국 자객의 손에 죽었다. 명성과 재주를 뽐내다가 결국 이름 때문에 망한 것이다.
조조;
경제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 장구 했으나 제후국의 모반 때 어정쩡한 처신으로 사사로운 원한을 갚으려다 도리어 저작거리에서 결국 죽음을 당했다.
42장. 장석지. 풍당 열전
장석지;
효문제 당시의 공정한 법 집행을 주창하였다. 같은 죄를 놓고 상황에 따라 달리 판결하면 황제 또는 국가를 신뢰하지 않게되므로 공정해야 한다. 예로부터 아첨하는 신하는 많아도 직간하는 신하는 적으므로 군주는 날로 오만해지고 자기 허물을 알지 못하니 나라가 망조에 들게돤다.
풍당;
옳바른 장수를 기용해야 함을 강조.
황상의 뜻에 아부하지 않고 법을지키며 치우치지 않고 파당도 만들지 않아야 성왕의 도는 끝없이 평온하다.
43장. 만석.장숙 열전
만석군의 이름은 석분 그의 아들 다섯이 모두 2000석씩 공로를 받아 만석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워 졌다. 그 부자는 예의 바르고 공손하며 지극정성으로 모든이를 대함으로 인하여 황상으로 부터 인정 받았다.
건릉후 위관;
책임있는 윗 사람 역할에 충실해 아랫 사람의 핑계를 대지 않았다. 즉 황상이 준 검을 한번도 쓰질 않았다.
주문;
남의 비밀을 폭로하거나 헐뜻지 않았다.
장숙;
타인을 비난하거나 죄인을 다루지 않았다.
공자는 말은 어눌해도 행동은 민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이런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44장. 전숙 열전
전숙;
엄격하고 청렴하다.
전숙이 노나라 재상일때 왕이 백성의 물건을 탈취하자 백성의 원성이 자자했다. 전숙은 백성에게 백성이 군주를 제소해서 되겠는가? 왕이 창피하여 재상 전숙에게 돌려주라했더니 재상은 왕에게 "왕께서 직접 빼앗은 것을 저더러 돌려주라 하시면 왕은 나쁜이가되고 저는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니 저는 못하옵니다" 그러자 왕은 직접 돌려 주었다.
대체로 달은 차면 기울고, 사물은 성하면 쇠락하는 것이 세상 이치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알고 뒤로 물러설 줄 모르며, 오래도록 부귀의 형세에 있으면 화가 쌓여 동티가 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범려는 월 나라를 떠났고, 물러나 관직과 직위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름은 후세까지 전해져 만세에 이르도록 잊혀지지 않으니 어찌 그를 따를 수 았겠는가!
45장. 편작.창공 열전
편작;
발해지역 객사의 성실한 직원이었고 손님중 장상군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의료 비법을 하사 받았다. 제나라 환후의 병을보고 치료를 여러차례 요청하였으나 이를 무시한 환후는 결국 치료불가의 상태까지 간후 후회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죽은자를 살리는 것이어닌 치료하여 살릴 수 있는자를 살리는 것이 그의 직분이었다. 고칠 수 없는 여섯가지 질병은 교만방자하여 병 자체를 부인하는 것, 재물아까워 치료하지 않는 것, 입고먹지못하는 것, 음양오장의 기가 불안정한 것, 몸이 허약하여 약을 못먹는 것, 무당말은 믿고 의사말은 믿지 않는 것. 이라 한다. 편작의 의술을 시기하던 진나라 태의령 이혜에 의해 암살당했다. 편작은 맥을 잘 연구했다.
창공(순우의);
양경으로부터 의술과 자료를 하사 받았고 삼년간 임상실험을 통해 검증실험을 하고 본격적인 의술을 펼쳤다. 하지만 숨어살았어도 시기하는 놈으로인해 형벌을 받게되자 다섯째 딸 제영이 조정에 글을 올려 사정을 아뢴뒤에야 편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태사공은 말미에 여자는 궁에 있으면 밉든 곱든 질투를 받고, 선비는 능력이 있든 없든 조정에 들어가면 의심을 받는다며 노자의 "아름답고 좋은 것은 상서롭지 못한 그릇이다" 라는 되내이며 편작의 죽음과 창공의 숨어 삶의 이유를 말한다.
46장. 오왕 비 열전
유비;
유방형 유중의 후손으로 오나라 왕에 봉해졌으나 그의 세자가 황태자와 바둑을 두다 오만하게 굴어 죽음을 당하고 난뒤 모반 할 계획을 짜고 각국의 제후 들과 연합하여 황실을 공격하되 재상 조조의 오만함을 이유로 모반 핑계를 삼았으나 원앙이 황제에게 조조를 제거하면 혁명도 잠잠해 질거라하며 황제에게 건의하고 조조를 참수했으나 유비의 목적은 모반 이었음으로 황실에 대한 공격은 계속되었으다. 그러나 결국 힘을 다하지 못하고 한나라 황제에게 진압당하여 끝이났다. 태사공은 말하길 조조나 원앙처럼 '권모에 앞장서지 말라. 도리어 재앙을 입게된다'라며 이릉을 두둔한 본인의 과오를 반성하듯 말했다.
47장. 위기.무안 후 열전
위기후(두영);
효문제의 두태후 사촌오빠 아들로 오초두나라 반란을 제압하면서 등용되었으나. 시운의 변화에 둔감하였다.
무안후(전분);
한무제 태후의 친인척으로 등용되었으나 신분만 믿고 권세휘두르기를 좋아하였으며 두영위기후와 학식없이 용감하기만 한 관부를 술자리의 실수가지고 모함하여 물러나게 했으나 무제 역시 무한후의 못된 습성을 모르는 바가 아녔으며 무한후가 귀신들려 죽었음에도 살아 있었으면 역적의 음모로 멸족을 했을 거라 하였다. 사실 무제는 무안후가 회남왕 유안(효경제동생)에게 무제가 자식이 없음으로 다음 황제는 회남왕 차지라고 말한 것을 알고 있었음이었다.
48장. 한장유 열전
한장유;
양나라 사람으로 위기후 두영과 무안후 전분이 다툴때 전분의 편에 섯다. 선비를 알아보고 능력있는자를 무제에게 천고 하였다. 재물욕이 많았으나 현명하고 청렴한 인사를 알아보는 능력은 있어 다행이다.
49장 이장군 열전
이장군(이광);
경제와 무제때 뛰어난 장군이며 흉노족을 상대로 공을 많이 세웠다. 높은 지위까진 오르지 못했으나 그를 따르는 병사가 많았고 활쏘기를 무척 잘하였다. 흉노족에 산체로 포로가 되었으나 탈출하여 돌아와 평민으로 강등되었다가 무제때 다시 복권되었다.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울 기회가 오지 않는 이유는 젊어서 항복한 자들을 살해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상관으로부터 선우를 공격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억울 한 마음에 스스로 자결 하였다. 이광의 아들 삼형제중 첫째 이당호는 아래 이릉이라는 유복자를 두었다. 천자는 이씨 집안 대대로 활을 잘 쏨으로 이릉에게 기병을 주었다. 흉농하 싸우던 이릉은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결국 흉노의 포로가 되었고 선우는 그의 집안 용맹성을 높이사 딸을 이릉에게 결혼시켜 교화하고자 하였다. 이를 알게된 한무제는 그의 어머니는 물론 처자식을 몰살했다.
50장. 흉노 열전
하나라에서 갈라진 민족이 흉노족이 되었고 춘추 전국시대 지속적으로 중원의 제후국들과 전쟁을 하다 진나라 시황때 잠잠하게 평정되었다가 초한 대전 기간동안 확장세력이 커져 한나라 때 가장 왕성해졌다. 묵돌이라는 선우가 올라서며 가장 강대해졌다. 묵돌은 자기가 화살 쏜 곳은 무조건 따르는 이도 화살을 쏘개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그자리에서 목을 베니 따르지 않는자가 없었다. 한고조도 묵돌에게 포위 당하여 고전했으나 선우늬 처 연지를 꼬득여 간신히 포위에서 풀려 살아 돌아 온후 포용 정책을 폈다. 한 공신 노관은 연의 제휴로 있었으나 배반하여 흉노로 넘어 갔다. 효문제까지 흉노와 한은 화친을 맺고 연나라 환관 중항열을 보냈으나 그는 흉노 편에 서버렸고 묵돌의 아들 계육은 계속해서 한에 무뢰하게 대응하였다. 효경제에 이어 무제초 까지 화친은 잘되었으나 무제는 한안국을 위시로 마읍에 병사를 매복시키고 흉노 묵돌의 손자 군신이 쳐들어 오기를 꾀하였으나 군신은 위사를 잡아 문초한 결과 매복을 알아 내고 이리하여 화친은 끝나게 되었다. 무제는 위청, 공손하, 공손오,이광, 표기장군, 곽거병등 많은 장수를 동원하여 흉노를 북방멀리 쫒아내고 남월을 평정하였다. 흉노는 군신의 아우 이치사 그 아들 오유 그 아들 오사려까지 선우의 대를 이으며 한에 간헐적 침략을 하였으나 그 위세는 날로 약해졌다. 저저후가 선후가된뒤 흉노에귀순하지 않은 사지는 모두 한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겉으로는 화친이었으나 뒤로 다시 한을 공격함으로 한은 이릉과 공손오를 출정시켰으나 이릉운 포로가 되었고 선우의 딸과 혼인하게되었다. 당시 한의 장수들 이사장군등 모두 패하여 흉노에 투항하였다. 태사공은 말한다. 천자가 위업을 일으키려 한다면 오직 장군이나 대신을 가려서 임명하는 데 달렸을 뿐이라고 ...
51장. 위 장군. 표기 열전
위청(거기장군);
평양후의 처 위온이 정계와 정을 통하여 낳은 종의 신분으로 배다른 형제중 위자부 누이가 무제의 후처가 되면서 일약 그 집안 사람들이 귀해졌다. 누이를 시기한 대장공주의 시기를 받아 죽음에 처한 위청을 공손오가 구해주고 무제의 은근한 보호의 손길이 비쳤다. 흉농하 싸워 전과를 높인 위청은 드디어 장평후로 봉해진뒤 대장군까지 승진하였다.
전장군 조신은 흉노에 투항하고 우장순 소건이 살아돌아오자 군법회의에서 축근들은 위청에게 군의 위신을 보여 목베라는 놈과 겨우 살아돌아온 장군을 목베면 누구도 투항하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에 내가 비록 천자의 후광을 업고 출세하였지만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고 천자의 뜻에 맏기겠다고 말한다. 천자는 소건을 평민으로 둔다. 위청 맞누이의 아들 곽거병의 등장 그리고 왕부인이 다시 천자의 총애를 받자 위청은 왕부인에게 짜웅을 한다. 이 사실을 알게된 무제는 좋아한다.
곽거병(표기장군);
젊은 표기 장군은 날로 일취 월장하여 대장군 위청보다 더 많은 공로를 세워 흉노족의 씨를 북쪽 깊은 곳 까지 쫓아 많은 포로와 포획으로 천자의 사랑을 듬북 받았고 위청의 대접은 더 이상 없었다. 위청은 그나마 자기병사들을 생각 했는데 곽거병은 천자의 말은 끔벅 죽는 듯이 사양하고 잘 들었으나 자기 병사들에게는 관대하지 않았다.
태사공은 소건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말한다 소건이 위청에게 "존귀한 신분인데도 대신들중 대장군을 칭송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에 대장군 위청은 "위기후 두영과 무안후 전분이 대신과 빈객들을 후하게 대하자 천자는 늘 이를 갈았소. 사대부를 가까이하고 어진이를 칭송하고 어리석은자를 물리는 일은 군주된 자의 고유 권한이지 내가 월권하여서는 아니되오."라고 말했다 한다. 장수로서 마음가짐이 좋다고 보았다.
52장. 평진후.주보 열전
공손홍;
40에 춘추를 배우고 60에 관직을 얻었으나 흉노족에대한 사신으로 다녀온 후 무제위 눈밖에나 면직 당하였고 다시 고향 사람들로 부터 추천 받아 다시 관직에 나가 과거를 치루었는데 꼰지로 등극하나 무제는 이를 일등으로 번복했다. 이번엔 서남이에 대해 헐 뜻었으나 무제는 그제야 그의 유교적 성실함과 검소함이 맘에들어 무제의 신임을 얻어 인정받게 되었다. 나중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자 만이 남을 다스릴 줄 안다며 자신의 부족함을 말하며 공직에서 물러 나고자 하였으나 무제는 그를 신뢰하고 더욱 분발 항 것을 원했다.
주보언;
제 임치 사람으로 정계 진출을 원했으나 아무도 받아주는 이가 없었다. 위청의 소개로 조정에 글을 올려 그날부로 천자를 만나게 되었다. 글 내용은 진시황제와 고조가 흉노를 막기위해 시행한 일들이 결과적으로 효과가 없음을 예로 들며 흉노를 대적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국가 안위는 임금의 명령과 인재등용에 달렸다고 하는 내용으로 흉노를 몰아내는데 성공한 무제 입장에서 이제부터 장래를 생각하게하는 마음에 쏙드는 상소였다. 그외에도 서악, 엄안등의 상소를 받은 무제는 그들을 불러 "그대들은 그동안 어디있다가 이제야 만나게 되었소" 하며 무척 반겼다. 한마디로 전쟁을 멀리하고 이제 부턴 내치 죽 민심을 잃지 않아야 된다는 그들의 정견에 무제도 새로운 방향을 얻게 되었다.
권력을 얻게되면 누리고 싶은 법 주보언은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제후들의 약점을 미끼로 뒷거래를 하다 또다른 제후로 하여금 주보언을 밀고하게 만들어 천자로부터 죽음을 받았다. 남의 비밀을 들춰내면 결국 자기가 위태로워진다. 주보언이 요직에 있을 때 사람은 그를 칭찬 했으나 사사되고나자 선비들은 앞다투어 그를 욕했다.
53, 남월 열전
위타;
진이 멸망하자 내침김에 왕이되어 남월 무왕이라 일컬으며 독립했다 하지만 고조가 한나라를 세우자 겉으로는 천자로 받들고 내심으로는 월에서 천자 노릇을 했다 이후 오대가 왕으로 이어졌으나 권력욕이 강한 여가에 의해 멸족당하고 결국 한의 속국으로 명맥을 이었다.
54장. 동월 열전
지금의 복건성 지방으로 민월은 무저 동월은 요가 다스렸는데 그들은 모두 월 구천의 후손들이다. 동월에서 여선이 난을 일으켜 쿠테타를 하였지만 한늬 군대에 제압 당하고 그뒤로 한을 섬겼다.
55장. 조선 열전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보냈다. 연나라에서 도망한 위만이 조선을 세우고 그 후손 위기로 하여금 평양에서 한에 맞서 대항하였다.
56장. 서남이 열전
특별한 것은 없고 그저 현재 중국 땅에서 인도쪽으로 가는 방향의 지역이다.
중국땅이 얼마나 넓으면 중원을 제외한 외곽이 모두 오랑캐라고 했을까.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 불렀지만 오늘 날 나는 중국을 떼국이라 부르기도하니 피차 일반이되었다.
57장. 사마상여 열전
사마상여;
탁왕손의 딸 문군과 눈이 맞어 야밤도주 한후 주점을 열고 어렵게 살다가 나중에 장인의 용서로 처가 덕을 보았다.
상여가 제후들의 일을 적은 자허부라는 책을 천자가 읽고 상여에게 칭찬을 하니 상여가 '유렵부'라하여 천자의 일을 논한 사냥과 관련된 이야기를 적은 부를 천자에게 올리니 천자가 감복하여 상여를 낭으로 임명하고 귀하게 대접한다. 내용은 제나라와 초나라왕이 사냥터의 웅장함을 자랑하는 내용으로 무시공이라는 자가 등장하며 천자의 사냥터 규모로 기선 제압을 하고 마지막에 그런 넓은 사냥터를 천자는 자기를 위해 활용하기보다는 백성들이 활용 할 수 있도록 어짐을 배푼다는 그런 내용이다.
상여는 촉과 파 지역은 물론이고 서이를 한나라에 복속 시키기위한 노력을 한다. 이유는 천자의 백성이 편한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한 명목이다.
사마상여는 말을 잘 못했으나 글하나는 기가막혔다.
진2세의 무덤을 바라보며 아무도 찾지 않는 형세를 안타갑게 여기지만 그의 살아 생전 업보이니 후세의 교훈이 되어야 한다고 글을 썼다.
상여는 천저가 그리는 선인의 모습을 그린 대인부를 썼다. 천자가 무척 기뻐하였다. 성요가 죽자 무제는 그의 책을 모두가져오라하는데 처 탁문군은 타인에게 모두주어 없다고하며 봉선이라는 서철만을 전달한다. 그리하여 5년뒤 무제는 태산에서 봉(하늘에 제)을하고 양보산에서 선(땅에 제)하였다.
58장. 회남.형산 열전
회남왕 여왕 유장;
고조의 막내아들로 조나라 왕의 미인이 고조에게 여자를 받쳐 낳은 아들이나 조나라가 역모에 연류되어 참수할때 그의 어머니도 죽었다. 벽양후에게 여후의 힘을 빌려 살게 부탁을 요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차 성장하여 경포가 쫒겨난 회남왕에 자리한후 벽양후를 단칼에 살해 했고. 천자 문제가 자기형이라고 거들먹거리며 천자 처럼 행동하는 무뢰한 이었다. 결국 한나라를 배신하는 역적을 꾸미다 들통 났으나 형 문제는 연류된이는 모두 목베고 유장만은 그래도 살려주고 먹고 마시는데 문제 없도록 처리하였다.
하지만 귀향지로 이동중 굶어 죽었다. 문제는 인심이 흉흉할까봐 그 아들들을 왕으로 봉하고 묘지도 잘 써 주었다. 효경제때 오초등 일곱나라가 발난을 일으켰을때 유정의 어들 삼형제는 반란에 가담하지않고 한의 편을 들어 아버지 유정과는 다른척 했으나 부전자전이었다.
제 순우곤은 왕명을 받아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며 따오기를 선물로 가져 갔으나 출발하자 마자 따오기는 살려주고 물마시게 하려다가 놓쳤다고 초 나라왕에게 말하며 다른놈으로 대치하거나 도망치거나 할 수 있었지만 거짓없이 솔직히 밝힌다고 하자 초왕은 그의 신의를 높이서서 상을 내렸으니 따오기를 가져와 받친 것보다 더욱 효과적 이었다.
사실 유장 아들 유안은 무안군이 무제가 아들이 없음으로 장차 천자감이라는 회유에 빠져 반역을 꾀한다. 하지만 신하 오피는 반역은 안된다고 구구절절 설득 시킨다. 하지만 회남왕이 반역을 굽히지 않자 할 수 없이 따르나 결국 역모논의가 밝혀저 유안은 자결하고 오피역시 죽음을 받는다.
형산왕 역시 반역을 꾀하더 들통나 죽게된다. 태사공은 부자가 모두 왕이 되었으나 반역을 꿈꾸는 오합지졸의 그들이 멍청하다고 말했다.
59장. 순리 열전
초 재상 손숙오;
장왕이 화폐를 크게 바꾸자 시장 상인이 불편해 했다. 손숙오는 왕에게 건의해 기존 작은 화폐로 되돌리도록 했다.
장왕이 수레를 높이고 바퀴를 크게하도록 법을 개정 하려 했다. 손숙오는 문지방을 높이는 방법으로 바꾸게했다. 손숙오는 재상에 세번 올라 모두 기뻐하지 않았다 이유는 당연히 여겼기 때문이고 재상에서 세번 떠났으나 슬퍼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 과실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 재상 자산;
소인배 무 놀음 무 늙은이가 쉬게되고 어린이가 일하지 않게되고 도둑이 없고 등등
노 재상 공의휴;
근검 청렴 누군가 아부로 생선을 선물하자 지금 생선 못사먹을 형편이 아니다. 생선 받고 벼슬에서 쫒겨나면 누가 나에게 생선을 주겠냐며 받지 않았고 자기밭의 채소와 집에서 짠 베가 좋차 없애버렸다. 이유는 농부와 베짜는 여자는 무얼 먹고 살겠는가? 하는 것이다.
초 재상 석사;
살인자를 잡고보니 저기 아버지라서 놓아주고 자기는 소왕에게 이실직고하고 감옥에 들어 갔다. 불효도 불충도 할 수 없어 죄를 지었다며 감옥에 갔다. 왕이 용서하려 하자 임금은 은혜를 배풀지만 신하는 직분을 지켜야 한다며 자결하였다.
진 옥관 이리;
하급관리의 잘못으로 판결을 잘못하여 사람을 해쳤으니 그 책임을 지고 스스로 자결하였다.
이들은 모두 주대의 사람들이다. 반면 혹리 열전의 주인공등은 경제와 무제 때 사람들이 대다수 이다.
60장. 급.정 열전
급암;
황제에게 직언하고 무위의 노자 사상을 추구하며 대쪽 같은 인물로 천자인 무제도 관을 쓰지 않았을 때는 급암을 피해 숨었다. 또한 무제에게 속은 욕심으로 차있으며 겉으론 인후 한척 한다고 직언도 하였다. 장탕과 같이 아부 떠는 대관고직에게도 왕앞에서 아부떨며 백성들이 곁눈질하게 만드는 인물이라며 직언을 하였다. 특히 유가의 공손홍과 장탕은 거북해 했다. 대장군 위청에게도 당당하게 직분에 대한 위세보다는 사람됨됨이가 중요함을 말하자 위청은 그와 친하게 되었다.
흉노 혼야왕이 수십만을 이끌고 항복해오자 무제는 말을 내어 맞게하려고 백성들에게 말을 징발했다. 누군가 말을 내놓치 않으려하자 벌을내렸다. 급정은 적을 맞이하기위해 내 백성을 벌 주는 꼴이니 당장 그만두기를 간하였으나 무제는 망령된 말이라하며 일거에 잘라버렸다. 그 뒤로 급정은 자연에 숨어 살았다.
정당시;
무제가 태자 일때 그의 사인이 되었고 천자가 된 후 무제의 옆에서 청렴 결백하게 일했다. 태사공은 말한다. 급엄과 정당시가 높은 벼슬에 있을 때는 빈객이 무수히 찾아들더니 좌천되자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한번죽고 사는데 사귀는 정을 알고, 한번 빈했다 부유해지는데 사귀는 모습을 알며, 한번 귀했다 천해짐에 사귀는 참된 정을 알게된다.
61장. 유림 열전
유학자들 이야기
무제는 어느정도 흉노를 제거하고 안정이되자 유학을 적극 장려하여 공손홍을 등용하였고 무안후 전분이 유학자를 많이 추천하였다. 신공의 경우 그를 추종하던 많은 유학자가 정계에 진출하여 출세하는 자가 많아 졌다.
원고생과 한생은 시경전문 복생은 서경전문가로 분서갱유 때 집벽 안쪽에 서경을 감추었다 29편을 찾아냈다. 고당생은 예기 동중서는 춘추 전문가였다. 동중서는 공손홍을 아부꾼으로 여기며 싫어했다.
62장. 혹리 열전
혹리가 있는 이유는 법만으로 강하개 다스리려하니 그렇게 강압적으로 하지 않고는 관직 수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공자의 법치와 덕치를 언급하고 노자의 상덕과 하덕을 논하며 혹이들을 열거 했다.
고후 때는 후봉. 경제 때는 조조를 혹리로 하고 질도는 혹리지만 서도 강직하고 청념함을 강조 했지만 결국 사사당했다. 경제가 상림원에 사냥을 하는데 가희가 변소에 있는데 맷돼지가 공격하려 들자 질도에게 막으라했다. 하지만 질도는 냅뒀고 경제가 나서자 오히려 말리며 천자가 그깟 계집하나에 몸을 상하려 하싶니까 라며 당당하게 말하자 두태후의 이쁨을 받았다. 영성이란자가 질도를 이어 관리가 되었는데 위아래도 없는 망난이 같은 놈이라 결국 죄를 받게되었는데 도망쳐 소작농을 부려 돈을 많이 번후 금전으로 다시 땅땅 거리며 살아간 놈이다. 주양유라는 놈은 더 악질 같은 혹리로 나중 사형되어 저작거리에 버려졌다. 혹리가 죽고 다음 관리가 올라도 배운 것이 그짝이라 별반 차이 없었다.
좌인을 알면서도 감싸는자 그 또한 죄인과 같은 형벌에 처한다는 견지법을 조우가 만들었다.
장탕은 어려서 쥐가 고기를 물고 훔쳐가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장탕은 온집안을 뒤져 쥐를 찾아내고 마치 죄인 다루듯 판결하며 증거를 일목요연하게 다루자 그 아비가 놀랐다. 장년이되어 출세를 하는데 무제의 마음을 좇아 판결을 하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평하지 않고 군주의 입맞에 마춘다는 비평을 들었다 무제는 그런 줄도 모르고 적극 승진시켰으나 결국 과하면 정적을 만드는 법 복수를 당해 파면괴고 죄를 받게되자 자결하였다. 후에 그의 재산을 확인햐보니 얼마 없자 그가 군주의 눈치는 보았지만 비리를 저지르지는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강하면 부러진다. 의종은 누이가 태후의 수발을 들어 동생을 천고하여 관리가 되었으나 원래 도적놈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완장을 차니 법집행을 원리원칙대로하며 꼬장을 죽였고 혹리 영성도 읺ㅁ에게 걸려 씨족이 몰상 당했다. 무제가 행차허다 길이 닦여 있지 않은 것에 노하여 의종을 추조후 사형하였다. 왕온서는 무덤을 파해친 도국꾼인데 장탕 밑에서 일하다 출세하였다. 그놈은 강자에게 굽실거리고 양자에게 더욱 호되게하는 졸장부로 도적때를 조정하며 이권을 취했다 나중 그놈이 죽자 재산이 어마어마 했다. 혹리거 죽어나가도 다음 관리 역시 배운고 본것이 혹리의 행살이라 별수 없었다.
태사공은 혹리지만 열심한 사람이 있고 나쁜고 간악한 놈이 있다면서 세상 통치를 법으로만 할 수 있음에 부정적 시각을 비췄다.
63장. 대원 열전
장건은 무제의 명을 받고 대원을 향해 출발하나 흉노에 접혀 거기서 결혼하고 살게된다. 하지만 자기 소임을 다해 결국 월지에 도착한 후 대원을 다녀 돌아오는데 13년이 걸렸다. 장건이 다녀온 곳의 문화와 지리를 상세하 보고하자 무제는 대원 대하 신독국과 무역을 통해 더 많은 교역이 이루워 지리라 기대했다. 대핧 가는길에 오손이라는 나라가 있어 장건은 다시 사신으로 오손을 다녀오고 한나라의 뜻을 알린다. 이후로 교역의 길을 확실하게 해 둘 수 있었다. 천자는 대하의 천마를 무척 좋아했고 사신은 갈 수록 많아졌다. 점점더 의중이 떠중이 들이 사자가 되어 왕례를하니 문제가 발생하였다. 당시 황하의 발원지를 곤륜산이라 하였고 이 곳에 옥석이 많은 것도 알게되었다. 무제는 말을 탐내어 이사장군에게 명하여 대원으로 군대를 보냈으나 돈황 이상을 넘어가기 너무 함들어 돌아오자 다시 지원병을 더 늘려 대원 정벌을 명했고 결국 대원은 말을 공급하기로 하고 한과 교역을 시작 했다.
64장. 유협 열전
주가, 전중, 극맹, 왕맹, 곽해등 의리 있고 검소한 협객들이 당대에 이름을 날린 유명한 이들과 다를버가 뭐 있겠는가...
현재를 사는 지금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꾿꾿한 신념으로 옳음을 찾아 살아가는 이들이 많음을 왜 모르리요
65장. 영행 열전
권력에 빌붙어 영달을 꾀하던 환관과 외척들 이야기 허나 군주의 야정 변화는 언제나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웠다.
"힘써 농사 짓는 것이 풍년을 만나는 것만 못하고, 정성껏 섬시는 것이 임금의 뜻에 맞추는 것만 못하다 "
등통;
효문재위 사인으로 문제가 꿈속에서 누군가의 동움을 받았는데 깨어 알아보니 등통 같아 등통에게 잘대해 주었다. 점쟁이가 등통은 빈곤 할 상이다 라고하자 문제는 등통에게 구리 광산을 주어 화폐를 찍어내게 하였다. 등통은 문제의 종기를 입으로 빨며 충 했고 태자 경제는 그런 둥통이 얄미웠다. 후에 등통이 돈을 찍을때 비리가 있다하며 고소하자 경제는 그를 파면 시키고 거지가 되게 하였다.
효무제 충신 한언;
무제가 태자 때 부터 친구로 황제가된 후 승승 장구 했으나 무제의 동생 강도왕이 황제의 마차를 타고 사냥터를 둘러보던
한언이 황제인줄알고 엎드려 배알 하였으나 황제는 없자 황제 행사를 한 것으로 황태후에게 말해 괴심죄를 걸어 결국 후궁을 겁탈한 죄를 물어 죽음에 이르게하였다.
무제 충신 환관 이언년;
누이가 후궁이 되면 승승 장구 해 무제의 사랑을 받았으나 궁녀와 문제등으로 파직 당하고 내 쫒겼다.
춘추 위나라 영공 때 황제마차를 타고나간것 먹던 복숭아를 임금에게주며 사랑 받던 미자하가 결국 그일로 죽게되었던 사례와 무엇이 다른가?
66장. 골계 열전
골계란 재치있게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 한마디로 코매디 개그
예기는 인간행동을 절도있게,악경은 인간의 마음을 조화롭게 , 서경은 사실을 말하고, 시경은 감정을 표현, 역경은 천비의 기묘한 변화를, 춘추는 간단하지만 심오한 말로 큰 뜻을 이야기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순우곤;
제너러에서 데릴사위 신분이나 제 위왕에게 발탁되어 위왕이 궁중에서 방탕하게 지내자 대궐 뜰에 3년간 날지 않는 새를 예시하며 방탕을 접고 통치해야 함을 해악적으로 말했으며 초나라가 쳐들어오자 조나라에 도움을 청하기위햐 선물을 전달하자 풍작을 바라는 농부가 제에는 별정성도 들이지 않고 풍작만 바람다는 비유를 들자 조나라에 바칠 공물을 더했다는 이야기. 술에 취함도 상황에 따라 급히 취할때가 있고 마셔도 마셔도 술이 암ㅎ춰항 때가 있다는 이야기로 국정 운영의 정신자세를 말했다.
우맹;
초나라 음악가로 장왕 시대사람
장왕이 말을 무척 아끼다 그 말이 죽자 그럴듯하게 공을 드려 말을 장사지내고자한다. 우맹이 장왕에게 그렇게해서 되겠느냐며 오히려 주변국의 사신도 부르고 관도 옥으로하고 더욱 화려하게 장사지내야 초 나라 장왕의 위세가 살지 않겠느냐고 건의하자 이를 깨우친 장왕은 내가 너무했나하며 조언을 요청하자 우맹은 개소말돼지 처럼 간을 차고 내장을 빼고 솥에 푹 삶아 사람 장 속에 장사지매라 하자 장왕은 궁궐 요리사에게 넘겨 그렇게하도록 했다.
손숙오는 초 장왕때 청렴한 재상이 었으나 그가 죽으면서 아들들에게 너희는 가난하게 될 것이니 그때 우맹을 찾아가라하였다. 가난한 손숙오 아들이 우맹을 찾아가자 우맹은 아버지가 살아계신 것처럼 행동하라한후 스스로 손숙오 처럼 분장하자 대신들이 손숙오록 착각하였고 장왕도 공신 손숙오가 살아 돌아옮을 기뻐하여 재상 자리를 주겠다하니 우맹은 부인과 상의 한 후 알려주겠다며 미룬다. 장왕이 결과를 묻자 부인이 반대하여 재상을 하지 않겠다하니 이유를 묻자 손숙오 친자들을 보니 가난하게 사는데 그까지 재상해서 뭐하냐고 말하자 장왕은 반성하고 손숙오 자식들에게 400호 봉지를 주었다.
우전;
진시황 때 난쟁이가수
궁궐호위병이 비맞으며 가련히 떨고 있자 시황제 앞에서 너희들은 키도 큰놈들이 불상하게 비맞고 나는 키도 작은데 궁궐 처마에서 비도 않맞는다 하니 진실항이 불상히 여겨 반씩 나눠가며 비를 피할 수 있게 했다. 시황제 사냥터에 사냥감을 많게하고 터도 넓게 하자 우전이 말하길 적이 처들어오면 사숨을 풀어 막게하면 충분하다 비꼬자 시황은 취소했다.
곽사인;
무제를 어려서키운 유모가 있었다. 무제 빽을 믿고 망난이향동하던 유모의 자녀들 때문에 조정에서 유모를 멀리가서 살게 하였다. 마지막 하직 인사를 들어온 유모에게 곽사인이 인사 후 돌아 갈때 뒤를 자주 돌아보라고 일럿다. 유머가 그렇게하자 곽사인이 "무제가 어직도 어린아 이 처럼 구대 적을 물려야 되는 줄 아닌가? 라고 소리치자 무제는 그 옛 고마운 마음이 생겨 그냥 다시 살게 했다.
동방삭;
무제 때 학자로 대신들이 장의와 소진 처럼 명예도 얻지 못한다며 비안냥 거리자. 태평성대에는 능력이 있어도 별필요가 없다며 시대의 상황이 영웅을 만든다는 식이라 그렇고 본인은 계책은 범려요 충성심은 오자서 보다 높다라며 일축했다.
동박삭이 죽으며 무제에게 간신의 참언을 믿지말라했다. 그러자 무제는"새거 죽으려면 지저귀는 소리가 애달프고 사람이 죽으려면 하는 말이 착하다@라 하였다.
서문표는 무당과 그제자 그리고 삼로등이 짜고 강의 신 하백에게 젊은 처자를 강물에 던져 시집보내는 무속 행사를 보고. 제 올릴 처자가 이쁘지 않다며 하백에게 어찌 할지 묻고오라며 차례로 무당 제자 삼로를 강물에 던져 버린다. 이때부터 그 마을에는 하백에게 여자를 바치는 일을 그만두게된다.
67장. 일자 열전
길흉을 점치는 사람
사마계주는 점치는 일을 하찮게 생각하고 찾아온 송충과 가의에게 복자가 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며 소인배가 아닌 대인배를 알아보는 일이라며 장왕한 논리를 펼치자 도가 높을 수록 더욱 편하지만 권세가 높으면 더욱 위태롭다 생각하였다. 이 장에서 옳바른 목민관의 자세를 사마계주의 논설로부터 배울 수 있다.
68장. 귀책 열전
거북이 등짝을 가지고 점을 치며 길흉을 판단 한다는 내용이 주가 되는데 아마도 글의 수준이나 내용이 조잡해 보이므로 사마천이 쓰지않고 저선생이 위작해서 넣어 놓은 것 같다. 사마천 사기 중에 가장 뜬굼없고 재미 없으며 지루하다.
69장. 화식 열전
부의 중요성 강조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을 것이 넉넉해야 영용을 안다. '
'천금을 가진 부잣집 어들은 저작 거리에서 죽지 않는다' '천하 사람들은 모두 이익을 위해 기꺼이 모여들고, 모두 이익을 찾아 분명 떠난다'라고 했다.
범려는 구천을 떠나 물품과 돈을 물흐르듯 유통 시켜 제나라에서 부자가 되었고 '부유하면 그 덕을 즐겨 행한다는'말을 남겼다.
자공은 위나라에서 조노나라를 상대로 무역하여 부자가되었다.
백규는 풍년과 흉년을 예측하여 사재기 풀기를 재빨리하며 큰 부자가 되었다.
진시황은 나라는 목축업자와 청이라는과부가 사업을 벌려 부자됨을 장려했고 그들을에게 예를 올렸으니 돈이 최고임을 실감케하는 사례다.
사마천은 중국 각지역의 물자와 자원 그리고 사람들의 풍습까지 기록했다. '부란 사람이 타고난 본성이라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얻고 싶어한다.' 사마천은 또 '일년을 살려거든 곡식을 심고, 십년을 살려고든 나무를 심고, 백년을 살려거든 덕을 배풀어야 한다.' 라는 속담을 논한다.
재물 없는 사람은 힘써 일하고 조금 있는 사람은 지혜를 짜내고 많은 사람은 이익을 좇아 시간을 다툰다. 대체로 일반인은 자기보다 상대방이 재산이 열배 많으면 몸을 낮추고 백배 많으면 두려워하며 천배 많으면 그의 일을 해주고 만배 많으면 그 하인이 된다. 부는 농공상의 순서로 늘리기 쉽다. 부자가 된 사람은 반드시 아끼고 부지런함 외에도 기이한 방법을 사용했다. 고로 부자가 되는데는 정해진 직업이 없고 재물에는 정해진 주인이 없다. 능력있는 자에게 재물이 모이고 능력 없는 자에게 재물은 기왓장 부서지듯 흩어진다고 했다.
70장. 태사공 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