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지침/책 이야기

사마천 사기 염파. 인상여 열전 (조사, 이목)

팡씨1 2019. 4. 8. 22:03

염파. 인상여 열전 (조사, 이목)

 

1. 서문

이번 편은 전국시대 말 혼란 시점에 조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명장 조사, 조사의 아들 조괄 장군의 어머니 , 그리고 염파 및 이목 장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 주제

경험과 실천 없는 탁상공론 또는 이론에만 그친 지략은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

3. 고사성어

-. 교주고슬(膠柱鼓瑟) (아교 교, 기둥 주, 두드릴 고, 거문고 슬 )(조괄 이야기) 거문고의 기둥을 아교로 붙여놓고 거문고를 탄다는 뜻으로, 규칙만 고수하여 융통성이 없는 꼭 막힌 사람을 이르는 말.

-. 지상담병(紙上談兵) (종이 지, 위 상, 말할 담, 병사 병)(조괄 이야기) 종이 위에서 병법을 말한다는 뜻으로, 실제적인 쓰임에서는 필요 없음을 비유한 말.

-. 병사지야(兵死地也) (병사 병, 죽을 사, 땅 지, 어조사 야) (조사와 부인 아들 조괄 이야기) 전쟁에서 사람은 죽는다는 말로, 사람은 죽을 각오를 하고 전쟁에 임해야 한다는 뜻.

4. 배경 및 소개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 세력이 확장되는 혼란한 시기에 조나라를 위해 힘쓴 인물들 1부 인상여, 염파에 이어 조사, 이목, 허럭(군사), 조괄의 모친 등을 소개하고 있다.

5. 등장인물

6. 책 내용

) 조사 이야기

①조사는 조세징수 관리자였다. (국세청 과세 직원에서 재무부 장관으로....) 

평원군의 납세 거부로 조사는 평원군 집사 9명을 죽였다. 이에 평원군이 노하여 조사를 죽이려 하자 되려 조사가 말하길 "당신은 이 조나라 왕자입니다. 평원군 같으신 윗분이 납세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나라의 법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법이 무시되면 나라는 쇠약해지고 그러면 주변 제후국이 침입해 오는데 이는 나라가 망하는 길입니다. 그때도 공께서는 부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납세를 하여 국법이 지켜지면 나라가 강해지고 강하면 감히 공자를 무시하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이에 약간 우유부단하지만 말 잘 알아듣는 평원군이 깨닫고 조사를 조왕에 추천하여 국가 세금 관리자로 임명하자 세금도 잘 거둬지고 나라도, 백성도 부유해졌다.

(조사 장군으로 임명되다

진나라가 한나라 치려고 연여에 주둔하자 조왕이 염파, 악승, 조사를 불러 연여를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모두 멀고 험하며 지역이 좁아 어렵다고 No.... 한다. 다만 조사는 형세가 험하고 좁으니 그 결과로 "이는 쥐 두 마리가 쥐구멍 속에서 싸우는 것과 같아 결국은 용감한 쥐가 이길 겁니다."라고 말하자 조왕은 조사를 장군으로 삼고 연여를 구하도록 했다. (BC270) 조사는 군중에 "군사에 관해 이러쿵 저러쿵하는 자는 목을 베겠다"라고 공표했다. 어느 날 진나라 군의 훈련 소리를 듣고 한 군사가 "빨리 공격합시다."라고  했다가 처형을 당했다. 이후 조사는 28일간 변동 없이 보루를 쌓고 있는다. 진나라 첩자가 이를 알고 돌아가 보루만 쌓고 있는 조나라 군의 상황을 알리자 진나라는 조를 공격한다. 이때 조사는 무거운 갑옷을 벗게하고 기동력 있는 병력을 구성하여 진나라 진영 가까이 접근한다. 이때 군사 '허력'이 목숨을 걸고 조사에게 "진군은 조나라의 보루를 공격할 것이니 때를 기다려 공격해야 한다."고 건의한다. 조사는 나중 한단에서 군사에 토를 단 것을 두고 부질형을 가하겠다고 말한뒤 일단 그의 전략을 받아 들인다. "북산의 고지를 점령하여 싸워야 합니다." 결국 전쟁에서 지게된 진나라 군은 연여의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이후 조사는 마복군에 봉해지고 허력은 국위(장군 다음 관리)가 되었다. (BC269)

(아버지 조사와 아들 조괄

그 아버지에 그 아들? No no No 그 아버지에 다른 아들.... BC260년 장평대전 때 조사는 이미 죽고 인상여는 병으로 위독하고 장군이라고는 염파만 남았다. 염파는 장평에서 수성만 하고 진군의 공격에 나아가 싸우지 않자 조 효왕은 진나라 술책인 "진은 조사의 아들 조괄은 두려워도 염파는 두렵지 않다"라는 소문을 믿고 조괄을 장군으로 파견하려한다. 이때 인상여가 "조괄은 아버지 병법 책만 읽었지 경험도 없는 애송이를 보내서는 않된다." 라며 말렸지만 결국 조괄을 출정시킨다. (비유 교주고슬(膠柱鼓瑟) (아교 교, 기둥 주, 두드릴 고, 거문고 슬 ) 거문고의 기둥을 아교로 붙여놓고 거문고를 탄다는 뜻으로, 규칙만 고수하여 융통성이 없는 꽉 막힌 사람을 이르는 말.) (지상담병(紙上談兵) (종이 지, 위 상, 말할 담, 병사 병)(조괄 이야기) 종이 위에서 병법을 말한다는 뜻으로, 실제적인 쓰임에서는 필요 없음을 비유한 말

④ 조괄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병법을 읽은 자이다. 아버지 조사도 그를 말로는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조사는 아들 조괄을 칭찬하지 않았다. 조괄 어머니가 남편에게 이유를 묻자 "아들 조괄은 전쟁을 무슨 장 난으로 생각해요 만약 아들이 조나라 장군이 되면 조는 망하고 말꺼요"라 대답했다. 조괄을 장군으로 나가게 하자 출정 전 조괄의 어머니가 조 효왕에게 글로 "조사의 아들을 조 장군으로 삼으면 안됩니다." 왕이 이유를 묻자 "아버지 조사는 함께 동고동락하는 사람이 많았고, 상을 받으면 그 후임들에게 나눠주었어요, 그리고 출정하게 되면 그날부로 전쟁만 신경 쓰고 집안일은 돌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 아들 조괄은 아버지 후광으로 졸지에 장군이 되어 부하들로부터 인사는 받으나 존경은 받지 못하고 왕께서 주신 하사금이 있으면 그것으로 땅 사고 부동산 투기 등등 사유 재산 증식에나 신경 쓰고.... 등등 그런데도 왕께선 어찌 저의 아들놈을 아버지와 같으리라 생각하십니까? 마음 씀씀이부터 다르니 부디 장군으로 삼지 마소서..."라고 했다. 조 효왕이 "이미 다 결정 난 일을 두고 더는 뒷 말 마소!"라고 하자 조괄 어머니는 "그럼 나중 아들 조괄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연좌제를 저에게 묻지는 말아주소!"라고 하자 왕이 약속한다조괄은 군령도 군관도 모두 바꿔 자기 사람 꽂고 출정하고 패전하여 죽는다. (장평 전투의 조나라 조괄의 실전 완패 이야기) 이후 진은 조나라 한단을 포위하고 초. 위의 지원으로 겨우 포위를 풀게 했다. 조왕은 조괄의 어머니를 약속대로 죄를 물어 죽이지 않음.

) 염파 장군 이야기

염파 장군이 장평에서 파면되자 그를 따르던 빈객들은 모두 떠나버렸다. 하지만 한단 포위가 풀리고 5년 뒤 연나라 재상 율복이 연나라 왕에게 건의하여 조나라가 장평에서 군사를 다 잃고 그 아이들은 아직 어려 군사력이 약하니 이때를 봐 침공했으나 염파 장군을 재 임용한 조나라는 연을 물리치고 연나라 성 5개를 빼앗았다. 이때 빈객이 다시 몰리자 염파는 "썩 꺼져버려!"라고 외친다. 이때 한 빈객이 "당신은 어찌 그리 판단이 흐립니까? 세상 사람 본성은 이익이 있으면 몰리고 없으면 떠나가는 것인데 당연한 이치를 가지고 뭐 그리 원망하고 옹졸하게 구시오!"라고....(염파의 본모습) 그 뒤로 위나라도 치고 공을 세우다가 효왕이 죽고 아들 도양 왕이 즉위하여 악승을 장군으로 삼으니 화가 난 염파는 악승을 쳐서 도망치게 하고 본인은 위나라 대량으로 망명을 한다. 이후 조나라는 이목을 장군으로 임명한다. 염파를 위나라는 믿지 못해 기용하지 않고, 조나라는 진나라가 자꾸 성가시게 하자 염파를 다시 기용하려 하고 염파도 쓸쩍 기대를 했다. 조왕이 염파에게 사람을 보내 의중을 알아보려 했는데 염파와 원한 있던 곽개가 왕의 명령을 받고 염파를 알아보려 가는 사람에게 뇌물 먹여 염파 상태를 나쁘게 보고하게 만들었고 염파는 그것도 모르고 밥을 꽉꽉채워 먹고 말 타는 실력도 뽐내고 했으나 돌아온 사신은 조왕에게 "염파가 밥도 잘 먹고 말도 잘 타는데 다만 나이 들어서 인지 오줌을 자주 눗터라..."라고 보고한다. 이에 조왕은 "염파가 늙었군 안 되겠다"하고 말아버린다. 이후 염파는 초나라 추순으로가서 장군으로 임명받았으나 공을 세우지 못하고 죽었다. 거기서도 그는 항상 "조나라 장군으로 싸우고 싶다"라고 염원했다 한다.

) 이목 이야기

북쪽 변방 흉노의 침탈을 대비하던 장수, 조세를 걷어 군사를 훈련시키고 백성을 잘 보살핀 장수. 흉노가 오면 봉화를 피우고 그들과 싸우지 말고 오로지 성안으로 대피만 하게 했다. 이에 내부에서도 비겁하다는 소리가 들리고 조왕도 아예 그를 불러들이고 다른 장군으로 대치시켰다. 이후 흉노와 싸우다 더 어려워지자 조왕이 이목을 다시 발령 냈지만 그는 오히려 나를 복권시키도 나는 예전 처럼 한다며 우기자 조왕도 승인한다.이목이 예전 처럼 하자 흉노의 선우가 그를 우습게 여기고 침탈했으나 소득이 없었고 이목은 이제 슬슬 군사를 훈련시켜 정예 병력을 키우고 전략자산 (전차, 기마병)을 준비해 단 한 번의 유인책으로 흉노 10만 명을 몰살시켰다. 이후 흉노는 10년간 침탈하지 못했다. 이후 염파 대신 이목에게 연나라를 치게 하였고 이후 진나라와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르면 승패를 거듭하다가 진나라가 조나라 신하 곽개를 뇌물 주고 매수해 조나라의 이목과 사마상이 반역한다는 술수를 부려 내몰자 이목은 반박한다. 하지만 조나라왕 천은 결국 이목을 잡아 죽인다. 이후 진나라 왕전이 조를 쳐서 멸망시킨다.

7. 총평

권력자 또는 임명된 자의 조급함이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 조나라는 삼진(. . )에서도 가장 건실한 나라였고 소진이 합종을 주장하던 때만해도 합종책을 이끄는 주도적 제후국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아버지 조사의 후광만을 얻은 조괄을 장군으로 임명한 후 장평 전투에서 진나라에게 45만 명을 잃게 되었다. 그 후에도 30여 년간 더 버틴 것만으로도 조나라의 장군들의 역량과 충성심을 높이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결국 조나라는 쇠퇴하여 진나라 왕전 장군의 공격으로(BC222년)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