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지침/책 이야기

사마천 사기 항우본기(2)

팡씨1 2020. 3. 6. 13:08

항우본기(2)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문학 TV 고경 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항우본기 첫 시간으로 항량이 회계 지역에서 초나라를 재건하고 북진 하여 옛 제나라 지역까지 진출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봤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항량이 죽음을 맞게되는 정도 전투와 항우가 대승을 이뤄낸 거록전투 그리고 항우가 신안지역에서 진나라 병사를 생매장 한 이야기까지 진행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옛 제나라 지역까지 도착한 항량의 활약 내용

 

회계에서부터 북진해서 올라온 항량은 설(薛)이라는 지역에서 수개월 동안 머물게 됩니다.

이 시점에 제나라 지역 상황을 먼저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이는 제가 전담열전에 올려 놓은 지난 영상을 참조 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제나라 역시 진나라의 혼란기를 틈타 전담이라는 사람이 왕으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진나라의 장한 장군과 싸우다가 전담이 전사합니다. 이때 죽은 전담의 사촌동생 전영은 동아라는 지역으로 달아 납니다. 그러자 제나라 백성들은 이번에는 전가라는 사람을 다시 제나라 왕으로 세웁니다. 그리고 전각이라는 사람을 상국으로, 전간이라는 사람을 장수로 임명합니다.

진나라 군대가 동아까지 진격을 하자 항량은 초나라 군대를 출격시켜 전영이 피해 달아난 동아(東阿)를 지켜줍니다. 항량의 도움으로 기세가 살아난 전영이 이번에는 자기 군사를 이끌고 사촌형 전담의 자리를 차지한 제나라 왕 전가(田假)를 쫓아내 버립니다. 그러자 전가는 항량이 있는 초나라 땅으로 달아나버리고 상국이었던 전각(田角)은 조나라 땅으로 달아납니다. 마침 전각의 동생 전간(田間)은 제나라 군대를 이끌고 조나라 땅에 가있었는데 제나라로 돌아올 수 없게 됩니다. 전가, 전각, 전간을 물리친 전영은 전담의 아들 전불(田巿)을 다시 제왕으로 세웁니다.

항량은 동아 지역을 공격했다가 도망가는 진나라 군대의 뒤를 추격하면서 사람을 전영에게 보내 제나라 군대를 이끌고 함께 서쪽으로 진격하자고 제촉합니다. 이때 항량의 도움을 받았던 전영이 항량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초 땅으로 달아난 전가와, 조 땅으로 달아난 전각과 전간(田間)을 죽여준다면, 제나라 군사를 동원해서 당시의 뒤를 따르겠소.」

그러자 항량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전가는 제나라의 왕이었던 신분으로 지금 처지가 어렵게 되어 나에게 몸을 의탁해 왔는데, 그런 사람을 차마 나는 그를 죽일 수 없소!」 라며 전영에게 거부 의사를 표합니다.

조나라 역시 전각과 전간을 죽이지 않고 제나라의 전영과 흥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나라 전영은 열이 받아 초나라를 돕기 위해 군사를 항량에게 보내지 않습니다.

이 얘기는 제나라의 전영이 초나라의 항량을 도와서 진나라를 함께 치지 않았다. 결국 제나라와 초나라가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었다라는 얘기죠. 만약 이때 제나라가 항량을 지원 했더라면 정도에서 항량이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죠. 이는 훗날 항우가 제나라를 토벌하게 되는 빌미가 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항량은 패공(沛公) 유방과 항우(項羽)를 시켜 별동군을 이끌고 성양(城陽)를 함락시키게 합니다. 그리고 서쪽으로 더 나아가 복양(濮陽)에서 진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그 성을 점령합니다. 패공과 항우는 다시 정도(定陶)를 공격했지만 진나라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함락시키지 못하고 군사를 되돌려 이번에는 옹구(雍丘)라는 지역에서 진나라 이인자인 승상 이사의 아들 이유(李由)와 싸워 그의 목을 베어버립니다. 항량은 이때 동아에서 서쪽 정도(定陶)로 옮겨 주둔하고 항우가 진나라 군대를 이기고 이유의 목까지 베었다는 승전보를 듣고는 자신만만해져서 진나라 군대를 얕보며, 슬슬 교만한 기색을 띄기 시작합니다. 잘 나갈 때 우쭐해 가지고 생색내는 사람들 있죠 항량이 그런 모습을 보였는 모양입니다.

 

항량의 교만한 모습을 본 송의(宋義)라는 사람이 항량에게 진언을 직접 면전에서 이렇게 합니다.

「싸움에서 승리를 했다고 우리 장수들이 자만하고 병사들이 게을러지면 다음 싸움에서는 반드시 패하고야 말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군사들의 사기가 다소 나태해지고 진나라 군대는 세력이 더욱 늘어만 가고 있으니 저는 장군을 위해 말씀드리는 겁니다.」

하지만 항량은 송의의 간언을 듣지 않고 오히려 그를 제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사자로 보냈습니다. 한편 제나라에서 항량을 만나기 위해 초나라로 오던 제나라의 사자 고릉군(高陵君)을 송의가 도중에 만나게 됩니다. 이때 송의가 말합니다.

「혹시 무신군(武信君) 항량을 만나기 위해 초나라로 가는 길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아마 무신군 항량은 조만간 있을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하고야 말 것이니까 차라리 천천히 걸어서 초나라에 들어가면 당신이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고 발걸음을 빨리하여 들어가신다면 화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한마디로 죽기 실으면 항량을 만나는 것을 미뤄라 이런 말이죠.

자 그럼 항량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죠

 

-. 정도전투에서 항량의 죽음 송의 등장

진나라 병력을 최대한 끌어 모은 장한은 정도(定陶)에서 초나라 군대를 공격해서 대패 시키고 이때 항량은 싸움 중에 전사합니다. 만약 이때 항우가 정도에서 함께 싸웠더라면 항량이 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때 항우와 유방은 진류(陳留)를 공격하고 있었고 그나마 진류성을 함락시킬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항우와 유방 두 사람 모두 항량이 진나라 군대에 패하고 항량마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기가 매우 떨어져 여신(呂臣)이 이끌던 부대와 함께 동쪽으로 후퇴합니다. 여기서 여신은 진승의 부하였는데 진승이 죽자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 편에 서게된 사람입니다. 여신의 부대는 팽성의 동쪽에, 항우의 부대는 그 서쪽에 주둔하고 패공 유방은 탕(碭))에 주둔을 하게 됩니다.

 

항량이 이끌던 초나라의 주력군을 대파한 진나라 장한 장군은 초나라의 잔병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즉시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하수를 건너 이번에는 조나라를 공격하여 대파합니다. 그때 조나라 왕은 조헐(趙歇)이었고, 그 장군에는 진여(陳餘), 상국에는 장이(張耳)가 있었습니다. ( 이 내용은 제가 올려 놓은 장이진여 열전 영상에서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조나라는 패잔병을 수습해서 거록(鉅鹿)까지 달아납니다. 진나라 장한 장군은 자기 부장 왕리(王離)와 섭간(涉間)에게 명령하여 거록을 포위하라고 하고 자신은 남쪽으로 이동하여 군량의 수송을 위해서 용도(甬道: 양식 운송로)를 건설합니다. 조나라 진여는 자기의 수 만의 군사들은 거록의 북쪽에 주둔시킵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하북군(河北軍)이라 불렀습니다.

 

이때 초나라의 회왕은 초나라 주력군이 정도에서 완패하자 두려운 마음이 들어, 우이(盱胎)를 떠나 팽성으로 몸을 옮기고, 여신과 항우 군대를 통합해서 자신이 직접 통솔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유방을 탕군의 태수로 임명하고 탕군의 군사들을 지휘하도록 합니다. 이때 지난번 송의가 사자로 제나라에 가다가 도중에 만났던 제나라의 사자 고릉군이 초왕을 접견하고 이런 말을 합니다.

「송의가 얼마 전에 항량의 군대가 진나라 군대와 싸움에서 패할 것이라고 예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며칠 후에 초나라는 진나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항량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송이가 아직 싸우기 전인데도 그 패전을 미리 예언했으니 송의야말로 군대의 일에 대해서 대가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들은 초왕이 송의를 불러서 군대 운용에 대한 일을 물어보고는 크게 기뻐하더니 송의를 상장군에 임명하고 항우는 차장(次將)으로, 범증(范增)은 말장(末將)으로 삼고 조나라를 돕도록 명령합니다. 별장(別將)들은 모두 송의(宋義)에게 귀속되어 경자관군(卿子冠軍 : 서생으로 일어나서 상장군이 되었다)이라고 칭했다. 송의 경자관군은 이후 출병해서 안양(安陽)에 당도했는데 46일이 지나도록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지체합니다. 그러자 항우가 송의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들으니 진나라 군대가 거록에서 조나라 왕을 포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빨리 하수를 건너 우리가 진나라 군대를 배후에서 공격하고 조나라가 안에서 대응한다면 진나라 군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송의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렇지 않소. 예를들어 소의 등에 붙어 피를 빠는 쇠파리는 잡을 수 있지만 소의 털에 붙어 있는 진득이는 어찌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이긴다 할지라도 진나라 군사들은 피로해 질 것이다, 그리되면 우리는 그 기회를 타서 진나라 군대를 이길 수 있소. 반대로 진나라가 조나라를 이기지 못할 경우 우리 군사들을 이끌고 서진하여 피로에 지친 진나라 군대를 공격한다면 틀림없이 우리는 승리를 할 수 있소. 그러니 진과 조 두 진영의 군사들이 먼저 싸우게 내버려두어야 하오. 아무튼 무기를 들고 직접 싸움에 나서는 것은 내가 당신 항우 보다 못하지만, 막사에 앉아서 작전을 짜는 일은 내가 그대 항우보다 더 낳을 것이오.」 라고 말한 뒤 한 수 더 떠 송의가 이번에는 초나라 군사들에게 이렇게 명령을 합니다.

「호랑이 같이 사납고, 양 같이 자기 멋대로고, 승냥이처럼 탐욕스러운 놈은, 비록 싸움을 잘한다고 할지라도 쓸 수 없으니 모두 베어 버여라!」 자 이 말은 항우 보고 들으라고 하는 말이죠. 이 말을 들은 자존심 강한 항우는 어떤 심정 이겠습니까? 열 받겠죠?

그런데 한 수 더 떠서 송의(宋義)는 그의 아들 송양(宋襄)을 이번에는 제나라 상국으로 임명을 합니다. 그리고 송양을 무염(無鹽)까지 전송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큰 연회를 열고 음주가무를 즐겼다. 송의가 자식을 출세 시킬려고 공적인 것 보다 사적인 것에 집중하며 한수 더뜬거죠. 이때 사실 날씨가 추워지고 큰비가 와서 초나라 병사들은 추위에 떨고 기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한 항우가 송의를 다시 찾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힘을 다해 진나라를 쳐부셔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꿈적 않고 나아가지 않아 기회도 놓치고, 식량이 떨어져 병사들은 굶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자식은 호화로운 연회를 열어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면서 진나라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 합니까? 정도전투 패전 이후 우리 회왕이 당신에게 모든 군사를 맏겼는데 병사를 돌보기는 커녕 자기 자식하나 챙기기에 정신 팔린 당신 송의는 진정한 초나라의 신하라고 할 수 없소이다!」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물러납니다.

성질급한 항우는 밤새 잠을 설치더니 새벽 일찍 상장군 송의의 막사로 난입하여 자고 있던 송이의 목을 베어 버리고 막사 밖으로 나와 군령을 내립니다.

「송의와 제나라가 초나라를 모반하려고 해서 초왕께서 나에게 명을 내려 송의를 죽이라고 하셨다.」 라고 일단 거짓으로 병사들을 설득 시킵니다.

당시 여러 장수들은 항우의 기세에 눌려 복종하고 아무도 감히 항거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애초에 장군님의 항씨 집안이 초나라를 처음으로 세웠으니까 오늘 장군께서 반역자를 주살하신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여러 제장들이 서로 상의하여 항우로 하여금 상장군의 직을 대리하게 합니다.

상장군이 된 항우는 자기 사람을 제나라로 보내 송의의 아들 송양을 죽이고 다시 환초를 사자로 초나라 회왕에게 보내서 송의가 모반을 했기 때문에 송의를 죽였다고 전달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항우는 군대내 장수에게는 회왕이 죽이라해서 송의를 죽였다 라고 하고 반대로 회왕에게는 송의가 모반을 해서 죽였다 라고 상반된 말을 하죠? 어찌 되었든 항우는 꼴 보기 싫은 송이를 죽이려고 작정을 했던 거죠. 어찌 보면 항우가 자기보다 못난 사람 밑에서는 함께 일을 못하는 성격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회왕은 이 말을 듣고 항우를 상장군에 임명하고 경포(黥布)와 포장군(蒲將軍) 등을 모두 항우에게 속하게 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거록전투에 대해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진나라 장한 장군과 거록 전투에서 항우 승리

항우가 송의를 죽이자 항우의 위세가초나라 내에서는 물론 제후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 지게 됩니다. 항우는 즉시 경포와 포장군(蒲將軍)에게 2만의 군사를 이끌고 하수를 건너 거록(鉅鹿)에 있는 조나라를 구원하도록

명하고 그들은 진나라 군과 싸워 하수 북쪽 강안에 진지를 구축합니다. 이때 진여가 다시 사자를 보내 항우에게 지원병을 요청하자 항우는 휘하의 모든 군사를 이끌고 하수를 건너갑니다. 항우는 강을 건너자 마자 타고온 배를 모두 강물 속에 가라앉히고, 밥해먹는 솥을 깨고, 막사를 불태운 후에 3일 치의 양식만을 지참케 합니다. 이 같은 조치는 병사들에게 필사의 의지를 보임으로써 두 마음을 품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죠. 고사성어 (파부침주 :破釜沈舟 :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군인이 싸움터로 나가면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고 결전을 각오(覺悟)함을 이르는 말). 하수를 넘은 항우의 초나라 군대는 진나라 왕리가 이끄는 진군(秦軍)과 아홉 번 싸워 모두 이기고 장한이 건설한 용도(甬道)마져 끊고 대승을 거둡니다. 진나라 장수 소각(蘇角)은 싸움 중에 살해당하고 왕리는 항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또한 섭간(涉間)은 초군에게 항복하지 않고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 자살합니다.그때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거록으로 달려온 다른 제후들이 10여 개나 있었지만 아무도 군사를 이끌고 먼저 출격해서 진군과 싸우지 못하고 주저주저 하는데 가장 먼저 초나라가 진나라 군을 공격하자 다른 제후군의 장수들은 모두 높은 곳에 올라가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만 합니다. 결국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의 군사들이 모두 용감하게 일당십의 기개로 싸우고 진나라 군대를 대파 합니다. 이로써 초군은 다른 제후군들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항우가 다른 제후군을 이끌던 장수들을 불러 모으자 그들은 항우 앞을 지나갈 때 허리를 굽히고 아무도 감히 항우를 똑바로 응시하지 못합니다. 항우는 이로써 제후군의 상장군이 되었고, 제후들은 모두 항우에게 귀속되게 됩니다.

자 그럼 거록에서 패한 진나라 장한 장군의 뒷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장한의 회의 (항우편에 서다)

진승 반란 이후 계속해서 승리했던 진나라 장한 장군이 처음으로 거록에서 패하고 극원(棘原)에 잔병을 이끌고 주둔하고, 항우는 장남(漳南)에 주둔하며 서로 대치상태에 들어갑니다. 이때 장한이 여러 번 퇴각하려고 하자 이세 호해 황제가 사자를 보내 장한을 책망합니다. 그러자 장한이 이번에는 사마흔(司馬欣)을 사자로 함양 궁궐에 보내 일의 전말을 전하고 지원을 요청 하도록 합니다. 사마흔이 함양에 당도하여 궁문앞에서 3일을 기다려도 조고가 나타나지 않자 사마흔은 마음속으로 의심을 품고 두려운 생각이 들어 다시 장한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조고가 사람을 시켜 사마흔의 뒤를 추격하도록 한것을 눈치 체고 다른길로 따돌리고ㅐㅑ 장한의 군중에 도착해서 함양 상황을 장한에게 이렇게 알립니다.

「조고(趙高)가 조정 안에서 정사를 독점하고 있어, 그 밑에 있는 신하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반란군과 싸워 이긴다면 조고는 우리의 공을 시기할 것이고, 반대로 이기지 못한다면 그 책임으로 죽음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기건 지건 이제는 우리에게 득될게 없으니 장군께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이런것을 진티양난이라 말할 수 있겠죠

 

이번에는 진여 역시 장한을 설득하기 위해 이런 편지를 써서 보내옵니다.

편지 내용은 이렇습니다.

「전국시대 소왕 때 진나라의 명장 백기(白起)는 남하하여 언(鄢)과 영(郢)을 함락시켜 초나라를 동쪽으로 내쫓았으며, 북쪽으로는 장평에서 조나라 대장 조괄(趙括)를 죽이고 그의 군사 40여 만을 구덩이에 묻었소. 성을 공격하면 반드시 함락시키고, 땅을 공격하면 반드시 점령했으나 결국은 진나라 소왕의 노여움을 사서 사사되었소. 진시황제 때 몽염(蒙恬)은 장군이 되어 북쪽의 흉노(융인戎人)들을 몰아내고 수천 리 땅을 넓혀 큰공을 세웠으나 그 역시 양주(陽周)에서 참수되었오. 그 이유는 진나라에는 공을 세운 사람이 너무 많아 그들에게 모두 봉지를 내릴 수 없었기 때문에 법을 이용하여 주살했기 때문이오. 장군이 진나라의 대장이 된 지 3년 동안, 수하의 군사 수십 만을 잃었으나 오히려 진나라에 대항하는 제후들은 서로 규합하여 그 군사들은 날이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소. 또 진나라 조고는 오랫동안 이세 호해의 눈과 귀를 막으며 아첨을 일삼았으나, 나라의 정세가 위급하게 되자 이세황제로부터 주살될 것을 두려워 장군이 오랫동안 안전만을 고려하여 공격하지 않고 수비로 일관했다며 그 책임을 물어 당신을 죽게하고 다른 사람을 보내 장군을 대신하게하고 이세로부터의 화를 면하려 하고 있소. 지금 장군이 비록 공을 세울 수 있다고 할지라도 죽음을 피하기 어렵고 또한 공을 세우지 못해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오. 장차 하늘이 진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데 장군이 직간을 해도 소용 없고, 버림받은 장수가 되어 고립무원한 상태에서 목숨을 구하려고 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니겠소? 이런 상황에서도 장군은 어찌하여 병사들의 방향을 바꿔 제후들을 따라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여 그 땅을 나누어 왕이 되어 남면하면서 고(孤)를 칭하지 않으려고 하시오? 그러다 장군 자신은 형구(刑具)에 엎드려 요참형(腰斬刑)을 당하고 장군 가족들이 죽음을 당하면 그때서 어찌 하려고 그러오?」

이 편지를 읽고 장한이 마음을 정하고 비밀리에 사자를 항우에게 보내 맹약을 맺도록 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항우가 이 시점에 다 된밥에 협상이 필요하겠습니까 항우는 지속해서 진나라 군대를 공격해 나갑니다.

다급해진 장한이 다시 사자를 항우에게 보내 항우를 만나서 이번에는 협상이 아니라 아에 항복을 하겠다고 전하자 그때서야 항우가 군리들를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군량미가 얼마 남지 않아 장한의 항복을 받아들여야겠다.」

그러자 군리들이 모두 말했다.

「옳은 판단이십니다.」

그래서 장한은 항우와 원수(洹水)안양) 남쪽의 은허(殷墟)에서 두 사람이 만나 항복 의식을 행하는데 장한이 항우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진나라 승사이 된 조고(趙高)가 진나라의 충신들을 모함하여 나라를 그르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항우는 즉시 장한을 옹왕(雍王)에 임명하고 초나라 군중에 머물게 했다. 그리고 장사 사마흔(司馬欣)은 상장군에 명하고 자기 군대를 이끌고 제후군의 전방에 배치해서 진나라를 향해 진격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항우와 제후국 연합 병사는 서쪽 진나라 수도 함양을 향해 나갑니다.

 

-. 항우 진나라 군사들을 신안에서 학살하다.

 

이윽고 진군의 행렬이 신안(新安)에 이르렀을 때 당시 제후군의 군리와 사졸들은 모두 옛날 진시황제가 폭정을 할깨 요역에 징발되어 여산릉(驪山陵) 공사에 동원되었거나, 변경 지방에 머물며 수비병이 되었거나, 아니면 서북쪽의 만리장성(長城) 축조 공사에 동원되어 관중지방 출신의 진나라 관리로부터 인간 이하의 대접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거록전투 이후 진나라 군사들이 제후군에게 항복하자, 제후군의 군리와 사졸들은 그들을 마치 포로나 노예처럼 대하며 모욕을 가하고 차별합니다. 그러니까 진나라 군사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웅성거리며

「장한 장군이 우리를 속이고 항우에게 항복을 했다. 오늘 우리가 이대로 관중으로 들어가 싸우다 지게되면 항우의 초나라 군대는 우리를 그들의 노예로 삼아 동쪽으로 끌고 갈 것이다. 그리되면 진나라에 남겨둔 우리 부모처자는 진나라로부터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라며 걱정ㅎ고 동요합니다.

이때 제후군의 장수들이 그 소리를 몰래 듣고 항우에게 보고하자 항우는 즉시 경포와 포장군을 불러 의논한 다음 이렇게 말합니다.

「여전히 진나라 졸병들이 아직도 마음속으로 우리들에게 복종하지 않고 있다. 관중에 들어가서 그들이 우리들의 명을 듣지 않는다면 일이 더 커질게 뻔하니 차라리 여기서 진나라 병사들을 습격하여 모조리 죽이고 장한, 사마흔, 동예(董翳) 이 세 사람만을 데리고 진나라에 들어가야 되겠다.」

그래서 초군은 야밤에 진나라 졸병들을 기습하여 20여 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신안성(新安城) 남쪽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 죽여버립니다. 이 사건이 항우가 저지른 신한 학살이 되겠습니다.

항우가 왜 진나라 장수 세 사람만죽이지 알았을까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항우는 병사 보다는 장군들 몇 명만 포섭 하면 자기가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항우는 진나라를 멸망시킨 후에 장한, 사마흔, 동예를 관중 지역의 제후로 임명하고 한중에 배치한 유방을 경계하도록 그들을 이용합니다.

 

다음회 : 함양에 먼저 도착한 유방을 불러 암살하려 했던 홍문연 내용과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항우를 도와 공을 이룬 추종자들에게 분봉하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