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지침/책소개

한신노관열전

팡씨1 2019. 7. 1. 20:02

한신노관열전

 

한왕 신

한왕 신 한신과 동명이인

전국시대 한나라 왕족 출신(양왕 첩의 손자)

(한신의 등장)

진나라말 각지역의 봉기때 왕가의 후예중 성이란 자를 찾아 왕으로 세우고자 했으나 정도 싸움에서 항량이 죽자 성은 초 회왕에게 돌아감 이때 유방이 장량을 시켜 옛 한나라를 접수하게하고 장량은 한신을 장수로 임명함.

(한신의 활동)

유방따라 무관에 들어가고 이후 한중땅 까지 와서 한 유방에게 동쪽 진출을 설득함(좌천이다. 사졸은 산동출신 귀향 희망, 동으로 진출하여 항우와 패권을 다퉈라)

잔도를 이용 삼진땅에 나왔을때 항우는 고향사람 정창이란자를 내세워 옛 한나라 지역을 방어케한다. 하지만 한신이 정창을 물리치자 한 유방은 한신을 한왕에 임명. 유방이 팽성에서 물러나 형양으로 퇴각했을때 한신은 주가와 함께 형양지역을 사수하다 항우에게 잡혔다. 얼마후 한신은 항우에게서 달아나 유방에게 복귀하고 해하에서 항우를 무찌른 이후 한 고조 유방은 한신을 다시 영천을 도읍으로하는 한왕에 재 임명. 그뒤 일년 후 유방은 한신이 사방으로 사나운 군대와 마주하고 있다며 북쪽 태원의 왕으로 옮기게 하고 진양이라는 곳에서 흉노를 남하를 막게했다.

이에 한신은 더욱 북쪽 지역인 마읍으로 도읍을 정하겠다며 유방에게 허락을 받고 옮긴다. 흉노의 선우 묵돌이 자주 마읍을 공격하자 한신은 선우에게 사신을 보내 화해를 요청.

이를 알게된 고조 유방은 혹시 한신이 모반하려나 싶어 사자를 보내 한신을 꾸짖는다. 이때 한신은 유방의 질타에 겁을 먹고 오히려 흉노와 결탁하여 마읍지역을 흉노에 넘기고 태원을 공격하여 한나라에 도전장을 내민다.

유방은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여 한신과 흉노를 북쪽으로 밀어내고 여세를 몰아 계속 북진하여 평성까지 진입한다. 하지만 백등산에서 유방이 흉노 기병에 포위된다. 이에 유방은 선우의 부인 연지에게 선물 공세를 해서 흉노 선우 묵돌의 포위를 풀게 만들고 안개낀 틈을 타 몰래 탈출하여 평성으로 돌아옴. 얼마간 양군은 전투를 멈추고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감. 이후 한신은 흉노와 함께 한나라 변방을 공격하고 한나라 관리로 북방에 파견된 진희를 설득하여 유방을 배신하게 만든다.

한나라11년 한신이 다시 흉노와 함께 한나라를 치자 유방은 이번에는 시장군을 출정시킨다. 시장군은 한신에게 다시 돌아오면 다시 복권시켜준다는 편지를 유방의 이름으로 보냈으나 한신은 자기의 죄 세가지(형양서 항우에게 항복한것, 흉노에게 마읍을 넘겨준 것, 흉노와 함께 한나라군대와 싸운 것)를 말하며 이제와서 다시 한나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답변을 보내온다. 이에 시장군은 삼합이란 지역을 공격하여 한신의 목을 베었다. 이때가 (BC196)년 이다.

이후 한신의 아들 퇴당은 그 아들 영과 함께 효문제때 한나라에 투항하여 후에 봉해졌고 그 후손들은 한나라에서 잘 살아갔다.

 

노관

유방과 같은 팽지역 고향사람. 두 사람의 아버지도 친구 지간이고 유방과 노관은 같은 날 출생한 동네고향 친구다.

처음 유방이 진나라에 반기들고 일어나자 노관은 처음부터 유방과 함께 했고 유방의 침실도 마음대로 드나드는 가장 가까운 측근이됨. 노관은 해하에서 항우를 무찌른 이후 항우가 임명했던 연나라왕 장도를 무찌른다. 이에 유방은 노관을 연왕으로 임명하고자 했으나. 다른 공신들로부터 노관을 편애 한다는 소리 들을까봐 신하들에게 연나라왕으로 누가 적합한지 묻지만 유방의 의중을 눈치챈 신하들은 그에 맞게 노관을 추천한다. 한 고조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고 유씨 가계가 아닌 제후는 일곱명 이었다. (지도를 보며 설명: 초왕 한신, 한왕 신, 양왕 팽월, 장사왕 오예, 회남왕 경포, 조왕 장오, 연왕 노관)

BC196년 대땅에서 진희가 반란일으키자 고조가 직접 한단을 공격하고 연나라 노관은 진희의 동북쪽을 공격한다. 진희는 흉노에 사람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고, 이때 연나라왕 노관은 장승이라는 그의 신하를 흉노에 보내 진희의 반란은 제압 되었다고 전하고자 했다. 이때 장승은 그 곳 흉노의 진영에서 과거 항우가 지명 했었던 연나라왕 장도의 아들 장연을 만난다. 장연은 장승에게 말하기를 “연나라는 흉노와는 화친하고 진희의 군대와는 싸움을 질질 끌며 오래버텨야 연나라가 오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장승을 설득시킨다. 사신으로 간 장승은 이말을 옳다여겨 오히려 흉노에게 진희를 도와 연나라를 치게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노관은 장승이 반역했다고 생각하여 그 일족을 멸하도록 하였으나 장승이 노관에게 돌아와 사정을 말하자 노관도 솔깃하여 장승 가족을 탈출시켜 흉노의 첩자가 되게 했다. 그리고 범제를 진희에게 보내 가능하면 전쟁을 질질 끌게했다.

한고조 12년 고조는 반역을 한다는 이유로 회남왕 경포를 쳐 제압하고 진희는 북방 대땅에 버티자 이번에는 번쾌를 출정시켜 진희를 죽였다. 이때 진희의 부장이었던 자가 연나라왕 노관도 그 신하 범제를 시켜 진희와 내통했다고 밀고를 한다. 이에 고조가 노관을 소환하자 노관은 병을 핑계로 유방에게 가지 않고 버티다가 말하기를 “이제 유씨외 남은 제후는 7명중 오예와 자기 뿐이다” 라며, 회음후 한신과 팽월의 죽음은 고조가 이제는 늙어서 여후에게 모든 일을 맞겨 벌어진 일이며, 여후는 유씨이외의 제후는 말살 시키려는 계책일 뿐이라며 버팅긴다.

이 소식을 고조 사신이 연나라를 다녀와 고조에게 말하고, 흉노에서 투항한 어떤 사람이 “연나라 노관의 신하인 장승이 흉노에 연나라 사신으로 있다.”고 밀고하자 고조는 노관이 반역 했음을 확신하고 번쾌에게 연나라을 치게했다. 노관은 한 고조의 건강이 좋아지면 고조에게 스스로 들어가 그간의 죄를 달게 받으려 했으나 얼마안되 고조는 병이 악화되어 운명한다.

사죄의 때를 놓친 노관은 이참에 흉노로 달아나고 흉노는 노관을 동호의 노왕으로 삼았다. 이후 노관은 한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하다가 일년뒤 흉노 땅에서 죽었다. 이후 노관의 부인과 아내는 한나라로 돌아와 고후를 만나려 했으나 고후도 죽고 노관의 부인도 죽었다. 훗날 효경제 때 노관의 손자가 동호왕으로 있다가 한나라에 투항하고 아곡후가 되었다.

 

진희

특별한 정보는 없고 한왕신이 흉노와 결탁하자 BC200년 대땅과 조땅 북쪽변방을 지키라고 고조 유방이 열후에 봉했다.

조나라 재상 이었던 주창은 진희의 빈객 규모가 과한 것을 보고 고조 유방에게 일러바치며 진희가 사람을 끌어모아 반역할 가능성이 있다는 염려를 전한다. 이에 고조는 사람을 시켜 진희를 조사하자 진희는 유방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되었다. BC197년 유방의 아버지 태상왕이 죽자 고조가 진희를 불렀지만 진희는 두려워 문상도 오지 않는다. 결국 진희는 그해 반역을 결심하고 대땅과 조땅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진희의 부장으로 왕황과 만구신이 있었다. 이러한 진희의 움직임을 조나라 재상이 고조에게 보고했다. 이때 고조 유방은 신하들에게 당장 쓸만한 장군감을 추천하라 명하고, 추천을 받자 그들에게 1000호를 주고 진희와 대항할 장군을 삼으려했다. 조정 신하들은 예전 항우와 싸워 승리한 공신들도 아직 다 보상을 못했는데 그까짓 추천 받은 자들에게 봉호를 주느냐며 고조에게 항의하자 유방은 화를 버럭내며 현실 상황을 보라며 누가도 나를 도와 모반을 막겠다고 나서는 자가 없잔느냐며 호통친다. 그리고 진희 의 부장 왕황과 만구신을 잡아 오는 자에게 상금을 걸자 배신한 그들 부하가 그들의 목을 가져왔고, 주발을 선두로 태원과 대땅을 공격하여 장악했고, 유방 아들 유항을 대땅 왕으로 만들고 번쾌를 시켜 진희를 뒤쫓아 BC195년 영구지역에서 진희의 목을 베었다.

 

태사공 평

한왕 신과 노관은 덕도 없으며 간신 처럼 행동하여 공을 이뤘고 어울리지 않는 제후까지 되었다. 그러면서 지나치게 그들의 세력이 비대해 졌다는 의심을 받게되었고, 밖으로는 흉노와 결탁해 흉노에 의지하려했다. 그들은 점차 조정과 멀어졌고 스스로 위태로움을 느껴 막다른 길에 놓이게 되자 흉노로 달아났다.

진희는 위공자 신릉군을 추앙하며 빈객을 모으고 선비를 겸손하게 대했다고 하지만 주창이 조사해보니 싹다 거짓 허위였다. 진희는 두려워져 이미 흉노에 넘어간 한왕신의 말을 믿고 반역을 했으니 ‘계책을 세우는 자의 설익음, 무르익음이 성패를 가르고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깊구나!’ 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