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의 앞뒷면을 읽으며 과연 조광조가 개혁의 선두에 있었는가? 개인적으로 반문하게 되었다.
그는 과연 개혁의 선두에서 이루지 못한 한을 품고 억울하게 사사되고 말았는가?
역사의 인물을 평가할 때 그가 살았던 시대와는 달리 후대에서 재평가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역사를 바라 볼 때 한 인물이나 한 시대에 대한 평가가 당대와 후대에서 달리하는 이유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역사를 공정한 시각에서 사고하고 판단하여 현명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 우리가 조광조를 개혁가의 초석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마도 이 시대 개혁의 필요성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나는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조광조를 개혁의 선두에선 의로운 자로 평가하기보다는
개인의 과도한 의지로 시작되었던 열정이 욕망과 자만으로 변질하여 허탈하게 생을 마감하는 인물로 평가해보았다.
연산군의 폭정에 시달리던 조정 대신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임금을 바꾸는 역성혁명을 통해 시대의 안녕을 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중종이 임금이 되고 백성의 삶은 안정되고 편안해 졌는가? 절대 No…. 그럼? 혁명에 성공한 공신들의 세상이 펼쳐진 것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패기를 가득 담은 사림의 영수 조광조의 등장은 중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신들로서 초기에는 별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종으로서는 조광조야말로 공신들의 압박으로부터 숨통을 틀 수 있는 왕의 수호 천사이었을 것이다.
현대도 대통령이 되고 정권을 얻게 되면 선거기간의 공로자에게 자리 하나는 반드시 마련해 줘야 하는 부담을 갖고 국정을 맡다 보니 윤창중 같은 성도착증인 놈들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하는 황당한 결과도 벌어진다. 엉겁결에 왕위에 오른 중종의 답답한 심정 이해할 만하다.
중종은 조광조를 은밀히 만나 당 태종의 충신 위징의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쓴소리 잔소리 보다 제대로 된소리를….
공신들을 향해 왕을 대변할 사람이 필요했다.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가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듯 조광조는 이런 중종의 절실함을 이용하여 왕의 힘을 빌려 공신들을 위협하니 공신의 입장에서 조광조는 반드시 처단해야 할 원흉이 될 수밖에….
개혁을 빌미로 조광조가 중종을 위협한 사례를 보자.
우선 어려서부터 세자로 책봉되지 않았으니 왕세자 교육을 받지 못한 무지의 대가를 보상하기 위해서는 경연을 열심히 해야 한다며 중종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둘째 폐비 신씨를 거들먹거려 과거의 아픔을 상기시켰으며, 차를 빌미로 여인 예향을 왕에게 소개하여 후궁들로 하여금 여인의 질투와 갈증을 조장하게 하고 왕의 심신을 흔들어 놓은 계략을 펼쳐 개혁의 의지를 왕과의 사적인 관계로 풀어 보려는 얄팍한 술수를 부렸다.
또한, 중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신들의 공로를 인정하는 위훈을 삭제하자고 왕에게 건의하였다.
개혁은 임금의 권력과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조정 공신들과 정책으로 우선 맞서야 하거늘 조광조는 절대 권력자인 왕의 힘을 빌려 실현코자 하였다. 진정한 개혁은 강한 것에서 시작해 유연한 것으로 마감해야 하는 것….
중종은 왕권을 위해 공신들과 맞설 대변인이 필요했고, 조광조는 개혁을 위한 왕의 대리 권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과거제도가 부패하였으면 과거제도 자체를 개혁해야지 엉뚱하게도 현량제(특례 입학 제도 또는 특례 공채)를 통하여 자기 인맥 깔기를 시도하려 하였다. 그것도 자기를 암살하려 했던 공신들의 계략을 무마한다는 빅딜로…….
유가 사상으로 뭉쳐진 사림의 대가 조광조가 어찌하여 현자를 찾는답시고 속세를 피하고 무위자연을 추구하는 도가의 대가 서경덕(화담)을 만나려 했는가?
요즘 정치인들이 뭔가 풀리지 않을 때는 각계의 저명인사를 먼저 만나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민심이 흉흉해지고 역병이 돌자 사회의 불안을 기회로 생각하여 개혁의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정암 조광조…. 때는 이때다 싶었을 것이다.
개혁은 정의라는 의지로만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공신 심정이 말하는 "정치는 자네 혼자 하는 것이 아니네, 부디 서책 속에서 빠져나와 열린 세상을 보란 말일세." 이는 조광조가 생각해봐야 할 사항이었다.
정암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올리는 백성들…. 정암에 열광하는 백성들…. 중종 앞에서 장암 스스로 왕보다 더 추앙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꼴…. 중종은 이때 정암을 공신이 아닌 백성이 힘이 되어 왕을 몰아낼 수 있는 백성의 공신으로 보였을 것이다.
주초위왕이 타락한 공신들의 조작이고 음모라면 조광조는 왜 굳이 적극적으로 중종에게 자기를 변호하지 않았는가?
은연중 왕을 무시하고 협박한 정암은 자신만만하여 중종이 자기에게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가? 아니면 왕의 총애를 믿었는가?
옛 월나라 구천을 따르던 공신 범려는 문종과 달리 원수인 오나라 부차를 멸한 공로를 바라지 않고 정치와 권력을 버리고 바로 떠났다.
한 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있게 한 공신 장량 또한 성업을 이루고 바로 떠났다.
조광조 그대는 어찌하여 구천에게 토사구팽당하는 문종에 대해 듣지 못했는가?
정암 그대여.... 유방에게 죽임을 당하고 스스로 토사구팽을 말한 한신을 몰랐단 말인가?
나는 조광조를 개혁을 빙자한 야망가라 부르고 싶다.
책 속의 구절들…….
"정치는 옳은 바만을 행한다면 따르지 않을 사람이 없사옵니다. 사특한 무리라고 하여도 옳고 그름 앞에서는 왕도가 없사옵니다"---48P
당 태종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위징….---50P 정암은 위징 같은 인물이 될 수는 있었어도 중종은 당 태종 같은 위인이 못 되었으니 사사될 수 밖에…. 오~~ 정암이 윗사람 보는 능력이 부족했구나…….
이조판서 인당은 정암의 지나치게 고집스러운 행보가 언젠가 조광조에게 큰 화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 105P 과하면 부족한 만 못하다.
중종의 뜨드 미지근한 개혁의 태도와 경연을 열심히 하지 않는 지루함 때문에 정암은 아마도 왕을 대신하고 싶은 충동도 있었으리라…….
무질서라는 것은 가진 자의 처지에서 본 세계관입니다. ---
정치는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과 같습니다. 왜 우는지 알아야 하고, 배가 고프면 밥을 주어야 하고, 아니면 필요한 것을 해 주어야 하는지요. 그저 운다 하여 매로만 다스린다면 회초리가 부러지는 순간 서로의 마음도 꺾일 것입니다. ---250P
어쩌면 저들은 나보다 정암을 더 두려워할지도 모르겠구나. 그에게 부여한 모든 힘은 나에게서 나온 것인데, 지금은 그의 힘이 나를 넘어섰음이야. 그건 분명하구나……. 그 똑똑한 정암이 중종의 이런 속마음을 모를 리 없건만, 주초위왕이 정암의 속마음을 들키게 한 것일까? 심지어 339P에서는 "함께한 동지 중종을 원망하지 않았다."라고 표현하며 유교 관념에 어울리지 않는 왕에게 '동지'란 표현을 썼다.
327P 정암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표현, 중종을 만나고 싶었다는 심정은 이미 떠나간 배…….
316P에 공신들이 중종에게 고하는 내용을 보면 조광조가 조정 공신들 입장에서 역지사지의 마음이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러니 사사 당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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