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본기(5)
2020.3.17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문학 TV고경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초한전쟁에서 항우와 유방의 광무성 대치 내용까지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사마천 사기 항우 본기 마지막 시간으로서 그간 다섯 편의 영상으로 소개드렸던 항우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초한전쟁에서 유방과 싸움을 벌인 항우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최후의 죽음을 맞게 되는지 아십니까? 그리고 죽고 난 항우의 시신을 유방이 어떻게 처리했는지 아십니까?
오늘 항우 본기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사마천이 기록한 항우의 최후 모습과 항우의 시신에 대한 이야기까지 상세히 말씀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이제 본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항우와 유방이 성고에서 대치를 하고 있을 무렵 회음후 한신은 하북을 점령한 다음 제(齊)와 조(趙) 두 나라 격파하고 초나라를 공격하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항우가 부하 장수 용저(龍且)를 보내 한신을 막도록 합니다. 한편 한신은 기병 대장 관영(灌嬰)을 보내 초군을 공격하여 용저를 죽입니다. 이후 한신은 스스로 제왕(齊王)이 됩니다. 용저의 군대가 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항우는 두려워져서 무섭(武涉)을 한신에게 보내 천하를 셋이서(유방, 한신, 항우) 삼분하자고 설득하게 합니다. 하지만 한신은 이 항우의 제안을 거부합니다. 이때 팽월이 다시 일어나 양나라 땅을 차지하고 초군의 양도를 끊고 후방을 교란시키자 항우는 장수 조구(曹咎)에게 양나라의 팽월을 보름 안에 죽이고 돌아올 테니 성고를 지키기만 하고 유방의 한나라 군대와 전면전은 치르지 말라고 당부의 말을 하고 팽월을 치러 갑니다.
항우는 즉시 동쪽 양나라로 나아가 진류(陳留)와 외황(外黃)을 공격했지만 외항은 버티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항복했다. 그러자 항우가 노하여 외항의 15세 이상 되는 성인 남자 모두를 성의 동쪽 끝으로 끌고 가서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이때 당시 외황(外黃)의 현령(縣令) 중에 13살 난 아들을 둔 사람이 항우를 찾아와서 “횡폭한 팽월이 외항을 차지하고 억압해서 이 곳 백성들은 항우 당신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는데 오히려 항왕이 오시더니 외항의 백성들을 모두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려고 하신다면 이 곳 외의 다른 10여 개 성 모두 필사적으로 항거하며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을 하니까 항우가 그제야 외황의 백성들을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려는 생각을 거두고 용서합니다. 그러자 그 소문을 들은 양나라의 성들은 모두 항우에게 항복해 옵니다. 항우가 그동안의 행적과 달리 처음으로 학살을 취소하니 민심이 돌아온 것이죠.
한편 유방이 이끄는 한나라 군대가 초나라 군대가 꼼짝 도하지 않자 초군을 향해 별의별 도전을 하고 욕도 하고 약을 바짝 올립니다. 초나라 대사마 조구(曹咎)가 격분하여 항우의 지시를 어기고 초나라 군사를 이끌고 나와 사수(汜水)를 건너 한나라군을 공격했다가 박살이 납니다. 결국 이 전투로 한군이 초군을 크게 무찌르고 그들의 양식과 기물을 모두 차지해 버리고 패전의 책임을 지고 초나라 장수 조구(曹咎), 장사 동예(董翳), 새왕(塞王) 사마흔(司馬欣) 등의 초나라 장수들은 사수 가운데서 목을 찔러 자결을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항우가 급히 서둘러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 진영으로 돌아오자 항우가 이끄는 초군을 두려워한 한군은 모두가 달아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립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나라 진영은 오창(敖倉)을 차지해서 식량이 풍부했지만 항우의 초군은 오랫동안의 싸움에 지치고 군량의 공급도 양도가 끊겨 충분치 않았습니다. 이때 한왕 유방이 육가(陸賈)를 항우에게 보내 아버지 유태공을 풀어달라고 청했으나 항우가 듣지 않습니다. 다시 한왕 유방이 이번에는 천하를 양분하여 홍구(鴻溝) 서쪽은 한나라의 영토로 하고 동쪽은 초나라의 영토로 하자는 협약을 맺자고 요청합니다. 식량 때문에 고전하던 항우가 유방의 제안을 받아들여 협약을 맺고 유태공과 유방의 가족들을 모두 돌려보내 줍니다. 유방과 협약을 맺은 항우는 제후들의 군사들을 해산한 다음 동쪽의 팽성으로 돌아갑니다. 한왕 유방도 역시 서쪽의 장안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장량과 진평이 제후들도 모두 우리 편이고 초군은 식량도 없는데 지금 초나라를 괴멸시키고 항우를 끝장내지 않으면 호랑이를 길러 화를 자초하는 길이라며 뒤통수를 치자고 유방을 설득합니다. 유방은 장량과 진평의 충고를 따르기로 결심합니다.
한왕 5년 기원전 202년 한왕은 즉시 항우의 뒤를 추격하여 양하(陽夏 하남성 태강현(太康縣))에 이르러 진영을 세우고 제왕 한신과 양왕 팽월의 군대와 합세하여 초군을 협격하기 위해 기일을 정해 약속합니다. 그러나 한군 유방이 고릉(固陵)에 이르렀음에도 두 사람은 오지 않습니다. 그 사이 초군이 한군을 공격하자 유방은 다시 보루에 들어가 참호를 깊이 파고 굳게 지키기만 하다가 장량을 불러서 한신과 팽월이 약속을 따르지 않으니 이제 어쩌면 좋겠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장량이 한신과 팽월이 초군과 싸워 이겨도 땅 한 푼 떼어주지 않으니 그들이 싸우러 오겠냐면서 이 번에는 정확히 구역을 정해서 땅을 떼어 줄 테니 함께 싸우자고 약속을 해야 한다며 조언합니다. 한마디로 말로만 “열심히만 하면 잘해 줄게” 정도 가지고는 아무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성적 약속 말고 정량적 약속을 해라. 그러니까 비유를 들자면 ‘먹고살 수 있게 해 줄게’가 아니라 ‘쌀 100 가마니 줄게’ 뭐 이런 말을 하라는 거죠
장량의 말을 들은 유방은 ‘좋소!’라고 대답하고 그 이후로 땅을 나눠 주겠다는 구체적 약속을 받은 한신과 팽월은 적극적으로 유방과 협력하여 항우를 몰아세웁니다.
한신은 즉시 군사를 이끌고 제에서 나오고 유가(劉賈)는 수춘(壽春)에서 진격하여 한신과 합류하여 해하(垓河)에 당도합니다. 또 항우의 대사마 주은(周殷)이 초나라의 항우를 배신하고 구강(九江)의 모든 병졸들을 규합하여 팽월을 따라 해하로 진격했다. 한왕(漢王) 유방에게 속한 모든 제후 군은 항우를 향해 진격하여 해하에 집결합니다.
항우는 해하에 보루를 구축하고 주둔하고 있었으나 군사는 적고, 양식은 다한 상태에서 한군과 제후 군들에게 여러 겹으로 포위당한 상태이고 이때 밤이 되자 한나라 군이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楚歌)를 부릅니다. 四面楚歌(사면초가 :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 초나라 군사들에게 고향 생각나게 만들어 전의를 상실시키려는 것이죠 이 노래를 들은 항우가 크게 놀라며 한나라 군대에 초나라가 이미 모두 점령당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제 항우도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죠.
항우는 한 밤중에 일어나 진중에서 술을 마시고 나서 전쟁 중에도 항시 데리고 다녔던 우(虞)라는 미인과 항우가 늘 타던 추(騅)라는 준마가 있었는데 이를 보며 비분강개하여 그 유명한 항우의 시를 지어 노래합니다.
力拔山氣蓋世 (역발산기개세) :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온 세상을 덮을 수 있지만
時不利兮騅不逝(시불리혜추불서) : 시운을 못 만나니, 오추마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구나!
騅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나하) : 오추마가 앞으로 나가지 않으니 이를 어찌할거나!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나약하) : 우미인이여, 우미인이여! 그대 또한 어찌할거나!
항우가 여러 차례 노래 부르니 우미인도 따라 같이 불렀다. 항우의 뺨에 눈물이 몇 줄기 흘러내리자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감히 얼굴을 들어 쳐다보지 못했다.
그 날밤 항우가 말에 올라타니 휘하의 부하 장사들 중 말을 타고 따르는 자가 800여 명에 달했고 그들은 곧바로 한군의 포위망을 뚫고 남쪽으로 달아났다. 날이 밝자 한군은 비로소 항우가 달아났다는 사실을 알고 기병대장 관영(灌嬰)을 시켜 5천의 기병을 이끌고 항우의 뒤를 추격합니다. 항우가 회수를 건넜을 때는 말을 타고 뒤를 따를 수 있는 군사는 100여 명으로 줄었다. 항우의 일행이 음릉(陰陵) (안휘성 정원현(定遠縣))에 이르러 길을 잃어버리고 밭을 가는 늙은 농부에게 물었다. 농부가 항우를 속여 왼쪽이라고 가르쳐줬다. 항우의 일행은 결국은 커다란 늪지대에 빠지고 말았다. 이에 한군은 항우의 일행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항우가 즉시 일행과 함께 동쪽으로 나아가 동성(東城)에 이르니 따르는 군사들은 겨우 28기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러나 수천의 한나라 기병은 항우의 뒤를 계속 추격했다. 한군의 추격을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항우가 말을 타고 그의 뒤를 따르던 군사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군사를 일으킨 이래 8년이 되었다. 몸소 70여 차례의 전투를 겪었고, 내 앞을 가로막은 자들은 모두 목을 베었다. 나의 공격을 받은 성들은 모두 항복을 해서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싸움에서 진 적이 없었고 때문에 천하를 제패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졸지에 이곳에서 곤궁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늘 내가 죽음을 무릅쓰고 통쾌하게 싸워 반드시 이겨서, 너희들을 위해 한군의 포위망을 풀고, 적장들의 목을 베면서 적군의 깃발을 부러뜨려, 지금 내가 이런 곤궁한 처지에 놓이게 된 이유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지 내가 싸움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희들로 하여금 알게 해 주겠다.”라고 하며 초나라가 어려움을 당한 것은 하늘의 탓이지 자기 탓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리고서 자기의 용맹으로 하늘의 운명도 뒤바꾸겠다는 식이죠. 항우의 이 말에서 용기 하나는 크게 사줘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항우는 용맹 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기 힘들죠. 하나 더 있나요? 한 여자 우희 만을 사랑한 것…..
항우는 자기를 따르던 기병을 나누어 네 방향으로 향하게 하고 한군이 포위해오자 자기 병사들에게 우리를 포위한 한군 장수의 목을 베겠다고 말하고 실행해서 한군 장수의 목을 실제 벱니다.
항우가 그 와중에 한군 장수 한 명의 목을 베거 죠. 한군은 항우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어 추격군을 3대로 나누어 초군이 달아난 곳을 멀리서 포위합니다. 하지만 항우가 다시 한군을 향해 돌격하여 도위(都尉) 한 명을 참살하고 백여 명의 군사들 죽입니다. 그러자 초군이 다시 모이게 되고 이때 항우가 모인 그의 군사를 향해 물어봅니다. “자 내가 한 말이 어떠냐?” 항우의 군사들이 “대왕의 말씀이 맞습니다”라고 맞장구칩니다.
항왕은 계속 남쪽으로 피해 이윽고 오강(烏江)에 이릅니다. 이때 오강의 정장(亭長)이 배를 강 언덕에 대고 기다리다가 항왕에게 강 건너 강동(江東)(난징에서 상하이까지) 땅은 비록 협소하지만 인구가 많으니 다스릴 만하다며 속히 배에 올라 강을 건너자고 합니다. 그리고 강에는 오직 이 배밖에 없어 비록 한군이 쫓아오더라도 강을 건너지 못할 것이라고 전합니다.
이 말에 항우가 웃으면서 말하길.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고 하는데, 강을 건너서 무엇하겠는가? 그리고 옛날에 내가 저곳 강동 사람 아들들 8천 명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나왔다가 모두 전사하고 오늘 단 한 사람도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는데 설사 강동의 부모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 준다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 비록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나만 부끄러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며 이제야 자기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며 인정하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는 그 정장에게 5년간 함께 해온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말은 차마 죽일 수 없다며 말을 넘겨줍니다.
항우가 이어서 그 부하들에게 모두 말을 버리고 걷도록 하고 손에는 짧은 무기만을 들고 한군을 향해 돌격하더니 항우 혼자서 한군 수백 명을 죽입니다. 하지만 항우 역시 몸에 십여 군데에 부상을 입고 항우가 지쳐서 앉아 숨어있었는데 근처에 있던 한군의 여마동(呂馬童)을 보더니 “너 옛날 내 부하였던 놈이 아니냐?” 라며 소리치자 항우와 얼굴을 마주친 여마동이 한군 왕예(王翳)를 향해 손가락으로 항우를 가리키면서 “이 사람이 바로 항왕(項王)입니다.” 고자질합니다.
그러자 항우는 곧바로 쥐고 있던 단검으로 자기의 목을 찔러 스스로 자결합니다. 이때 왕예가 먼저 젭사게 항우의 목을 취하고 여러 기병들이 앞다퉈 항우의 시신을 가지려고 다투다가 서로 죽이고 마지막에 가서 양희(楊喜), 여마동(呂馬童), 여승(呂勝), 양무(楊武) 다섯 명 만이 항우의 시체를 갈라 하나씩 차지했고 그 다섯 사람이 모여 항우의 조각 난 시체를 맞춰보니 일치했고 항우에게 걸었던 만 호의 봉지는 모두 다섯으로 나누어 가지게 됩니다.
항우가 죽자 초나라의 남은 땅은 모두 항복을 했으나 오직 노현(魯縣)만은 그러지 않았다. 한왕 유방이 휘하의 모든 군사들을 동원하여 노현의 백성들을 모두 도륙하려고 했다가 노현 백성들이 예와 의를 지키며 그 주인을 위해 지조를 시켜 목숨을 바치려고 했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꿔 항우의 머리를 가지고 노현의 백성들에게 보이며 항복을 권유합니다. 결국 노현의 백성들은 항우를 장사 지내고 난 이후 한나라에 항복합니다. 원래 처음 진나라 말기 봉기할 때 초나라에서 회왕을 세우자 회왕이 항우를 노현에 봉했기 때문에 노현 사람들은 항우가 죽자 마지막까지 항우에 대한 의리를 지켜 유방에게 항복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현의 백성들은 항우를 노공(魯公)의 예로 곡성(穀城)에 장사지냈고 한 왕 유방이 항우를 위해 발상하고 그 빈소에서 흐느껴 울고는 돌아갔다고 합니다. 전국을 다시 통일한 한나라 고조 유방은 여러 항씨 종족들을 모두 죽이지 않고 항백을 포함한 여러 항씨들에게 땅을 봉토로 주고 후(侯))에 봉했고, 후에 유 씨(劉氏) 성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태사공 평
사마천은 ‘순임금의 눈동자가 두 개였다 라는 말을 들었는데 항우 역시 두 개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 뒤 그렇다고 항우가 순임금의 후예이겠는가? 한 뒤 또한 그렇지 않다면 항우가 어찌 그리 갑자기 일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 라며 항우가 순임금처럼 대단한 인물임은 인정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잔인함은 봐줄 수 없다는 평을 내리고 있습니다.
진나라가 폭정 하자 진섭(陳涉)이 가장 먼저 일어났고 이어서 천하의 호걸들이 벌떼처럼 그 뒤를 따라 서로 다투며 일어나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그중에 항우는 한 치의 영토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진나라 말기의 혼란한 틈을 타서 들판에서 일어나 세력을 잡고 3년 만에 다섯 제후들을 이끌고 진나라를 멸했다. 이어서 천하를 나누어 휘하의 장수들을 왕과 후에 봉했으며 모든 명령은 그로부터 나와 스스로를 패왕이라 칭했으니 비록 그의 권세가 끝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그런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다.
항우가 관중을 버리고 초나라에 돌아와서는 의제를 쫓아내 죽이고 자립하자 제후 왕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해서 난이 일어났고 항우는 스스로 공로를 자랑하고 사사로운 지혜만을 앞세워 옛 것을 따르지 않았으며 패왕의 업을 이루었다고 하면서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려 했다.
그러니 5년 만에 나라는 망하고 그 몸은 동성(東城)에서 죽어가면서도 여전히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 것이 항우의 허물이라고 평합니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내가 용병을 잘 못해서 지은 죄가 아니다.”라고 까지 말했으니 어찌 그가 황당무계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며 마지막 항우 본기에 사마천의 의견을 적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다섯 편에 걸친 항우 본기 영상을 통해서 알게 된 항우의 모습….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마천은 <사기> <항우 본기>에서 "항우는 당당하게 내세울 권위가 아무것도 없었으면서도 삼 년 만에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자신을 서초패왕이라고 했습니다, 항우는 비록 끝이 좋지 않았으나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 외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마천(기원전 2세기) 시대까지 중국에서 항우 같은 사람은 유일무이하다는 이야기이죠.
항우는 초나라 장수 항연의 손자로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삼촌 항량이 죽자 금수저가 흙수저로 변했는데, 다시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 진나라를 멸하고 초패왕이 된 것입니다.
항우는 솔직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멍청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항우의 인간적인 모습을 찾아보면 우미인 한 여자만을 사랑했고 자기의 속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유형의 인간이었습니다.
중국 역사학자 리중톈 교수는 항우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항우 주변에는 청렴결백하고 강직하며 지조 있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유방 곁에는 재물을 탐하고 색을 밝히는 사람과 보잘것없는 재능을 가진 '어중이떠중이'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도 왜 항우는 유방에게 패했을까요?
유방 주위에는 이익만 밝히는 염치없는 인간들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방에게 기대어 벼슬을 구걸하고 식읍(재산)을 얻고자 했습니다. 이런 염치없는 인간들의 욕망을 잘 알고 있는 유방은 이들에게 적당한 벼슬과 재산을 주면서 잘 구슬려 이용했기에 이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내용에서도 팽월과 한신을 끌어들이는 내용에서 볼 수 있었죠?.
리중톈 교수는 "유방의 한나라가 시작된 후 중국에서 항우처럼 바보 같고 순진하고 제멋대로인 영웅은 점점 줄어들고, 그 대신 음험하고 이익만 밝히는 비열한 음모가와 어리석고 진부한 서생들만 늘어났다"며 항우가 자신의 실패를 통탄하며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구나"라고 한 것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항우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것으로, 이때부터 중국에서 호연지기를 가진 호랑이와 표범의 시대가 끝나고 주인 말을 잘 듣는 개와 양의 시대가 문을 연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청렴결백하고 강직하며 지조 있고 예의 바르게 살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살다가는 인생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는 싶지만 그렇게 살 수가 없기에, 그렇게 살았던 항우를 좋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마천 역사 기록에 의해 알게 된 항우이지만 그를 통해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하는 옛 거울(고경)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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