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 송복
저자 송복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 율곡 이이가 주창한 십만양병설의 허위성을 당시 인구 자료를 근거로 입증하고 있다.
징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정치적 이념적 우월성을 이어가기 위한 후대의 조작이라고....
과거 역사를 바라볼 때에는 현시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아닌 그 시대의 특수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적 교훈을 놔두고 오히려 중국의 역사를 위대하다고 받아드는 사대부 유교 학파 특히 송시열과 이이 율곡의 후세 학파의 조선 잃어버리기가 결국 임진왜란 후 300년 만에 또다시 망국을 당하게 되는 원인이었으며, 무능한 왕과 안위만을 쫓던 고관대작들은 차지하더라도 백성의 고통을 어찌 헤아리지 않을 수 없는가?
한 나라의 고통은 국민의 고통이지 지도층의 고통이 아니다.
현대 사회도 한 회사의 부실은 종업원들의 고통만 가중될 뿐 기업주는 그때만 벗어나면 그만이다.
육지전쟁은 명나라와 왜의 전쟁이고 바다 전쟁은 이순신과 왜의 전쟁이었다고 표현할 만큼 조선의 군주와 수뇌들은 무기력하였다.
선조가 피난 중 함경도 두만강으로 피신하자는 계책을 막아 세운 것도 류성룡이요 의주를 통해 명으로 피난이 아닌 종속되는 내부 즉 주권 포기를 하려는 선조를 막은 것도 류성룡이다.
조선 땅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나가면 조선은 조선 땅이 아니 오이다. (조선 비아 유아) 육이오 때 이승만이 자기만 먼저 서울을 몰래 빠져나간 후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군이 괴뢰군과 잘 싸우고 있어 서울은 이상 없다고 거짓 보도후 한강 다리를 폭파한 것과 무엇이 다르리오.
백성은 이렇게 군주의 처신에 의심 없이 즉 반응할 뿐이다.
당시 류성룡의 계책이 없었다면 조선왕이야 없어도 백성은 큰 차이 없을 것이나 한반도 백성은 일본 또는 중국으로 갈라져 정체성도 없어졌을 것이다. 아마도 현재 쪽바리 말이나 중국말을 사용하고 있겠지…. 썩을~~
류성룡은 전쟁 중 가장 필요한 군량미 확보에 총력을 다하면서도 군량 확보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상소를 올려 그 어려움과 중요성을 계속하여 언질 하였다.
명나라 군대를 먹여 살려야 조선을 구한다는 생각, 그런 명나라 군대를 살리기 위해서 조선의 군사는 징병 할 엄두도 못하고 백성 또한 굶주려야 하는 상황…….
류성룡은 말 그대로 이런 상황 속에서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살아남은 이유는 찬찬 즉 하늘의 도움이라고 말한다. 최근 박근혜 정부로부터 총리 지명을 받은 문창극이라는 작자가 과거 일본 식민통치와 분단은 자칭 그가 믿는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하였다는데 류성룡이 알면 통탄할 일이다. 내가 보기엔 문씨가 믿는 하나님은 개망나니교회의 하나님일 뿐…….
조선 오백 년 역사에서 가장 최고의 인재로 추앙받던 율곡이 임진왜란 이전 10년에서 20년 사이 국정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선조에게 그저 문제점만을 이야기 했을 뿐 실질적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류성룡과 율곡의 차이점은 바로 이것이다.
율곡은 만원봉사에서 선조에게 현실을 상세히 상소하면서도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군주인 선조가 스스로 마련해 줄 것을 기대한 것인가? 이것이 군주 왕조체제의 한계인가?
오늘날의 정치는 민주적 의사 결정이지만 오늘날의 경제 기업 활동은 과거 군주 일인 독재시대와 어쩜 이리도 닮았을까?
군사적 전권을 천군이라는 명나라에 의지한 채 무능했던 조선은 그로부터 3백 년 뒤 또다시 일본이란 왜 놈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마는데 이번에는 싸움도 전투도 없이 그냥 통틀어 넘겨주게 된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어이없는 역사의 반복인가?
역사는 스스로 자기 역사를 주재하지 못하는 자에겐 언제나 불행이 되풀이될 뿐이다.
임진왜란중 영의정이라는 정치 업무와 도제찰사라는 군권 업무를 소화해낸 류성룡은 문관 출신 이지만 남다른 군사적 식견도 쌓고 있었다. 특히 임진란 1년 전 대설계를 통해 기무 10조 즉 군대로서 갖추어야 할 사항 열 가지 방책을 제시했었다.
그리고 임진란 이후 1년 뒤 훈련도감과 속오군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군사 조직에 대한 중앙과 지방 수비 체계를 확립시켰다. 즉 류성룡 정병주의 국방체계로 말미암아 군에 대한 불모지나 다름없는 조선에 군사다운 군사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장 고니시 유기나와는 부산에서 평양까지 400km의 거리를 하루 평균 20km의 속도로 침략해 왔는데 왜 평양을 접수한 후 의주까지 내 달리지 않았는가? 역사 기록 어디에도 그 설명을 명쾌하게 해주는 곳이 없다.
다만 류성룡은 그러한 왜장의 결정은 하늘이 도와 조선 재건 기회를 맞은 것이라 표현한다.
이 시점에서 국무총리 지명자인 문창극은 식민시절과 남북분단이 그가 믿는 개망나니 교회의 하나님 뜻이라 하고 있다. 그는 같은 민족 같은 핏줄이라고 볼 수 없는 왜의 피가 섞인 잡종 혈통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순신과 류성룡이 그를 대한다면 어찌할꼬. 바로 참수하여 저잣거리에 효시 밖에 다른 결정은 없었으리라.
명나라 참전 이유는 조선을 위함이 아니라 왜로부터 명나라 국토의 유린을 방지하고 그 유린 장소를 조선 땅으로 한정하여 조선에서 전쟁을 치르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전쟁을 오래 끌을 수 없는 명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조선땅을 분리하여 일본과 명이 강화하여 종결 시키는데 있다. 한때 영원한 우방은 없다는 말이 돌던 때가 있다.이것은 돌고 끝나는 말뿐이 아니라 현실이다.
백성은 어떠한가? 백성의 입장에선 꼭 조선의 백성일 이유도 없다. 그것은 유교의 교리 민심무상 유혜지회 가르침이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은 세뇌되지 않는다. 세뇌되는 건 오히려 왕과 신하들이다. 요즘의 기업 경영자의 처지와 같은 상황이다.
직원은 회사에 충성하지 않는다. 잘 대우 받으면 그 회사가 좋은 회사요 힘들고 경제적 여건이 나아지지 않으면 다른 회사로 바꿀 수 있다. 오로지 간부 경영진과 대표만 충성과 애사심을 강조한다. 명나라 사신이 들고온 역치하라는 내용은 선조를 바라보는 시각 하나는 무능함을 제대로 보았다. 하지만 선조가 세자에게 선양을 한다 한들 그 상황에서 뭐가 달라졌겠는가?
무능한 왕을 진작에 갈아치우지 못한 왕권의 절대적 유교 숭상 주의 때문일 것이다.
한편 왕실이라는 둥지에서만 살아온 선조는 진퇴양난을 치르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명군의 양호는 조선을 직접 통치하는 상황까지 다다랐다. 순진하고 무능한 선조는 그런 양호를 절대적으로 신임했으며 오히려 충신 류성룡을 양호를 변호하지 않는다 하여 몰고 간 간신들 주장에 떠밀려 그를 해임한다.
무능한 선조는 그대 하나로 충분하였으나 그런 무능한 사람이 한나라의 중책임을 맡고 의사 결정의 핵심이 되는 것 자체가 역사의 불행이다. 선조는 숭명의 달인이다. 한 나라의 최고 군주가 국적 포기를 선택한 안현수 선수 같은 행동을 해야만 하는가?
양호 변론을 거부한 것을 빌미로 그간 권력을 노려온 마수에 물든 신료들은 그를 탄핵하기 위해 상소를 올린다. 이에 공론을 따르는 것이 신하로서 해야 할 도리라고 판단한 류성룡은 사직하겠다는 상소를 선조에게 여러 차례 올린다. 그를 대신 할 마땅한 인물이 없음을 아는 선조는 계속해서 만류하지만, 이는 선조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 국운을 위해 뛰어온 그리고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도래한 류성룡의 스스로의 최후 결심이리라. 무사심이 공직자에게 엄격히 요구되는 것은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윤창중이나 문창극 같은 얼빠진 인물이 사심에 사로잡혀 국정을 핑계로 망국적 작태를 보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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