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지침/책 이야기

사마천 사기 - 위공자(신릉군)열전

팡씨1 2019. 3. 14. 10:12

사마천 사기열전 위공자(신릉군)열전

 

1. 서문

) 여러분은 주변에 어렵고 힘드신 분들과 많은 소통과 관계를 갖고 계십니까? 이번 열전은 귀천을 두지 않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많은 관계를 갖었던 전국시대 4명의 공자 중 가장 인재를 잘 알아보고 선비를 존대하는 어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위공자(신릉군 무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 맹상군, 조 평원군, 위 신릉군, 초 춘신군)

2. 주제

) 겸손의 아이콘 위공자. 겉모습만 보고 사람 사귀지 말라. 평범해 보이지만 그들 중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겸손하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상대를 대한다면 그들은 당신에게 보따리를 열을 것이다...... 인간관계의 중요성

3. 고사성어

) 절부구조[竊符求趙] (훔칠 절, 병부 부, 구할 구, 조나라 조) 훔친 병부로 조나라를 구했다는 뜻.

4. 배경 및 소개

) 전국시대 위나라 안희왕(BC276~243)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장평전투와 수도 한단 포위 시점 전후

5. 등장인물

) 신릉군 무기는 위나라 소왕의 막내아들이고 다음대 안희왕과는 배다른 동생이다.

위나라 안희왕, 후영(문지기), 주해(백정), 진비(장군), 여희(왕의 첩), 조나라 혜문왕, 평원군, 평원군의 처, 처사 모공과 설공, 한나라 고조 유방.

6. 위공자 열전 내용

) 위공자(신릉군)는 누구인가

①시대적 배경 : 위나라 재상인 위제에게 제나라에서 뇌물 받았다 하여 죽도록 맞고 진나라로 들어가 재상이 된 범저(응후)가 원한을 품고 위나라 수도 대량을 둘러싸고 위나라를 공격하자 위나라는 걱정에 휘말리게 된다.

②위공자의 성품 : 존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어질고 선비의 자질만 있으면 빈객으로 예우했다. 위공자는 교만함 없이 항상 겸손했다. 따라서 주변 제후국에서 많은 빈객들이 몰려왔다. 어진 선비인 빈객이 많아지자 주변 제후국들은 섣불리 위나라를 공격하지 못했다.

③위공자의 정보력 : 어느 날 위공자와 위왕이 바둑을 두는데 북쪽 봉화가 피어 오르고 조나라가 쳐들어온다는 보고에 위왕은 안전부절 못하는데 위공자는 "조나라 왕이 사냥 나온 것입니다." 하며 태연히 바둑만 둔다. 잠시 뒤 "조나라가 공격해 오는 것이 아니라 조나라 왕이 사냥 나온 것이었다"라는 보고가 되자 위왕이 묻는다. "위공자 당신은 그걸 어찌 아셨소?" "나는 조나라 왕의 은밀한 곳까지 첩보원을 배치했소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뒤로 조나라 안희왕은 위공자의 어질고 능력 있음을 꺼려 그에게 나랏일을 맡기려 하지 않았다. (능력 있어 기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맡기지 않음은 조왕이 쪼잔하거나 시기심이 많은 인물인가 봅니다.)

) 선비라면 귀천을 따지지 않는 위공자 ( 빈객으로 후영과 주해 모시기)

①후영은 누구인가 : 숨어 사는 선비, 직업은 위나라 수도 대량의 동문 문지기, 현재 나이 70,

②위공자가 후영이 어진 선비란 말을 듣고 빈객으로 모시려고 선물을 보냈으나 후영은 평생 청렴하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문지기 생활이 어렵다고 이제와 선물을 덜컥 받을 수 없다며 사양한다. 할 수 없이 위공자는 빈객을 모시기 위한 행사를 거창하게 벌려 놓고 행사의 초대손님으로 마차를 끌고 귀빈석(왼쪽석)을 비워두고 후영을 직접 모시러 찾아간다. 후영은 일부로 옷도 허름하게 입고 사양하지도 않고 뻔뻔하게 마차에 오르며 위공자의 태도를 살핀다. (이 정도면 나를 괘씸하게 보겠지...) 그런데 의외로 더 공손하게 모시는 위공자.... 후영은 이번에는 가는 도중 푸줏간 친구 좀 잠깐 볼 수 있도록 방향 좀 틀어 들러 달라고 까지 부탁한다. 후영은 친구인 주해를 만나 일부로 시간을 질질 끌고 있고 위공자는 운전대를 잡고 마냥 기다린다. 사람들은 문지기 주제에 지체 높은 공자를 기다리게 한다며 후영을 욕하기 시작하고 후영은 일부로 위공자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시간을 끈 것이다. 공자의 표정이 더 부드럽기만 하자 그때서 후영은 주해와 작별하고 마차에 오른다. 잔치 행사장에서 공자가 후영을 높은 자리에 두고 소개하자 빈객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위공자가 후영의 무병장수를 기원하자 후영은 답례로 오늘 자기가 한 무뢰한 행동을 끝까지 잘 받아주신 위공자께 감사 드리고 말하길, “시장 사람들은 지체 높은 위공자를 예의 없이 대한 사람이라며 모두 나를 욕했다. 그러면서 그것을 보고도 참고 인내한 공자님을 덕행 있고 선비를 귀하게 대하는 분이라며 더욱 칭송 했다라며 답례의 말을 한다. (후영은 자기희생을 통해 위공자를 높였다) 잔치가 끝나고 후영은 공자의 상객이 되었고 후영은 친구 백정 주해를 어진 자라 하며 소개했다. 이후 위공자는 주해를 만나려 해도 그는 일부러 답례도 하지 않았다.

) 절부구조[竊符求趙] 이야기 : (위나라 병력으로 조나라를 도와 진나라를 퇴각시킨 이야기)

①위나라 안희왕 20년 진나라가 장평전투 승리 이후 조나라 수도 한단까지 포위하자 조나라 평원군은 처남인 조나라 위공자에게 여러 번 지원병력을 보내 달라고 편지를 하였고 위나라 왕은 10만 군사를 장군 진비에게 주고 조나라를 돕게 파병한다. 이때 진나라는 조를 치는데 다른 나라가 도와주면 조를 친 다음 바로 2번 순서로 가만 안 두겠다고 공표하자 심약한 위나라 안희왕은 장군 진비에게 적당히 중간()지역에서 머물며 조나라를 돕는 척 하라 명한다. 이때 다급해진 조나라 평원군은 위나라 지원군이 중간에서 오지도 않고 지체하자 "처남이 그러면 못쓴다.... 내 위공자를 어질고 겸손한 사람으로 봤더니 그럴 줄 몰랐다. 내가 그리도 우습게 보이더냐? 지금은 내 처이지만 너희 누나가 불쌍하지도 않냐" 등등 오만 가지 섭섭함을 편지를 보내 드러내니 위공자는 왕도 아니고 돕고는 싶은데 어쩔 수 없자 답답한 마음에 스스로 겨우 전차 100대와 사병을 모집해서 죽을 각오로 진나라와 상대하겠다며 출정을 한다. 사병을 이끌고 가는 도중 동문의 후영에게 들러 출정 사유를 말하고 작별하고 떠나는데 후영은 겨우 "힘껏 잘 사우고 돌아오세요. 저는 늙어 동참할 수 없네요..."하며 작별인사를 하니 한참을 나아가던 위공자가 찜찜한 기분이 들고 후영이 고작 이런 식으로 죽으러 나가는 자기에게 말 하다니 '내가 후영에게 뭐 잘못한 게 있나?' (보통은 그럴 줄 몰랐다. 내 그렇게 잘 대해 주었건만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해? 내가 사람 잘 못 봤네 어쩌네 저쩌네' 하며 원망할 것인데....) 곰곰이 생각하다 후영에게 다시 돌아가 묻기를 "혹시 내가 후영 당신께 뭐 잘못한 것 있소?"라고 묻자 후영은 웃으면서 "공자님이 다시 돌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성급히 출정하는 것은 호랑에게 고기를 던져주는 꼴입니다. 그동안 빈객은 공연히 두셨습니까" 라며 웃자 위공자는 두 번 절하고 방법을 물었다. 이에 후영은 대안을 제시한다.

②진비의 병력을 이용하라 : (부절(호부) 탈취 + 주해 동행)

위공자가 예전에 현재 왕의 사랑을 받는 여희라는 여자의 부친 살해범을 잡아 도운 적 있으니 여희에게 부탁하여 왕의 병부(출병 시 왕을 대신하는 증표 반쪽)를 훔쳐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하라고 조언한다. 여희가 병부를 훔쳐 공자에게 전달하자. 다음으로 후영은 병부를 보고도 진비가 믿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럴 때를 대비하여 자기 친구이며 힘이 장사인 백정 주해도 함께 동행시켜 진비가 딴소리하거들랑 주해를 시켜 진비를 죽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위공자가 눈물을 흘리니 후영이 묻기를 "공자님 죽음이 두려워 웁니까?" 하자 공자는 "진비는 용맹하여 내 명령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러니 난 그를 죽여야만 하니 그가 불쌍해 우는 것이오"라고 답한다. 주해는 기다렸다는 듯이 참여했고 출발하며 후영에게 작별을 고하니 후영은 "나는 공자님이 진비의 영내에 다다르면 북쪽을 향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결하겠습니다"라고 응답한다.

③업 땅에 도착하여 진비에게 왕의 명령이라며 병부를 보이고 병력을 인수하겠다 말한다. 이에 의심 많은 진비가 "겨우 마차 한대 끌고 와서 병부 보여주고 병력을 인수하겠다고?" 하며 왕에게 직접 확인하겠다고 나서자 주해가 바로 진비를 쳐 죽였다. 위공자는 이어 병역특례법을 알린다. “아버지와 함께 온 병사 집에 가시오, 두 형제가 온 병사 큰 아들은 돌아가시오, 외아들이며 부양 의무자 돌아가시오.” 병력 10만 명 중 면제자 2만 명 끝.... 사심을 버리고 전쟁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정예병력 8만 명으로 결정 후 조나라에 들어가 수도 한단을 포위한 진나라 군대를 공격하니 진나라는 포위를 풀고 퇴각하고 조나라는 위기에서 벗어난다. 조나라 공자이자 위공자의 매형 평원군은 화살통을 멘 채로 위공자를 맞이하고 조나라 왕은 두 번이나 절을 하며 맞이한다.

) 조나라에 공 좀 세웠다고 우쭐대지 말고... 겸손하라.

①빈객 후영은 위공자가 진비 진영에 도착하자 자결하였고, 위왕은 병부를 훔쳐 장군 진비를 죽인 일에 화를 내고, 위공자는 위나라 군대를 다시 위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빈객과 함께 조나라에 머물렀다. 조나라 효성왕이 조나라를 구해준 고마움에 봉토를 주려고 하고, 위공자는 겸손을 잊고 은근히 자화자찬하며 받으려 하자 빈객 중 한 사람이 말하길. "세상사 남이 공자에게 배 푼 일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공자님이 남에게 배 푼 일은 잊어야 합니다. 진비를 죽이고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한 것은 조나라 입장에선 공이지만 위나라 입장에선 반역입니다. 그런데도 공이 있다하여 스스로 교만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 위공자가 정신을 차려 나는 위나라에 해를 입혔고 조나라에 큰 공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라고 겸손히 조왕에게 응대를 하니 조나라 왕은 감히 봉토를 주겠다는 말을 못 하고 탕목읍(조세로 목욕비가 나올 정도의 봉토)을 제공하기로 한다. 그 이후로도 위공자는 위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 조나라에 머물렀다.

) 위나라로 돌아가게 만든 조나라 처사(어진 자연인) 모공과 설공 이야기

①처남인 위공자와 매형인 평원군의 뒷 담화... 대결 :

모공은 노름꾼 집에 설공은 술 파는 사람 집에 숨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벼슬하지 않는 초야에 숨어 사는 어진 선비인데 위공자가 기필코 찾아내어 서로 사귀었다. 그러자 위공자의 매형인 평원군이 아내에게 "처남을 처음에는 괜찮은 사람으로 봤는데 이제 보니 천한 놀음꾼, 술주정뱅이와 함께 지낸다는구먼~~ 타락했나 봐변했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누나가 동생 위공자에게 전하니 위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위나라 왕을 저버리고도 조나라를 구해 매형 평원군을 도왔는데 그런 말을 해? 그러는 매형은 뭐 그저 호걸인 척만하지 참된 선비를 구하는 것은 아닌 거 같아~~~ 나는 위나라 대량에 있을 때부터 모공과 설공이 어질다고 해서 조나라에 와서 이제야 사귀었는데 참~~~ 매형은 내가 그들과 사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네... 오히려 매형을 사귀면 안 될 사람이군... 누나 나 여기 조나라 떠날래"라고 하자 누나는 남편 평원군에게 사정을 말했다. 이 말을 듣고 평원군은 위공자에게 와서 미안하다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평원군의 빈객들은 평원군을 떠나 위공자 신릉군을 따르기로 한다. (빈객이 자꾸 떠나 가는 평원 대학) 위공자가 10년 가까이 조나라에 머물자 진나라는 이때를 기회로 위나라를 공격하였다. 위나라는 진나라에 시달리다 못해 결국 위공자가 빨리 조나라에서 위나라로 돌아오길 부탁한다. 하지만 위공자는 두려워 빈객들에게 "나보고 자꾸 위나라로 돌아가자고 하면 그땐 죽을 줄 알아!"라고 말한다. 빈객도 모두 같은 입장이라 누구도 위나라로 돌아가자고 하는 이가 없었다. 이때 모공과 설공이 말하길. "당신이 조나라에서 대우받는 것은 위나라가 있었기 때문인데 돌아가지 않으면 진나라가 위나라 수도 대량을 함락하고 조상의 묘를 다 파헤치면 그건 당신 때문일 것입니다"라고 하자 혼비백산하여 즉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 위공자의 최후.

①위나라 안희왕은 위공자가 오자마자 반기며 장군으로 삼았고 이를 알게 된 제후국들(... )은 병력을 지원해서 위나라를 도와 진나라 군대를 하외에서 깨고 함곡관까지 밀어냈다. 진나라 소왕은 대책을 내어 진비의 옛 빈객을 찾아내 위왕에게 위공자를 헐뜯는 말을 전하게 한다. "위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조나라에서 있다가 이제 와서는 위나라에서 공을 세우고 제후국의 장군들까지 통솔하니 주변 제후국들은 위나라 안희왕은 잊고 이제 위공자만 알 뿐입니다. 그리고 제후들도 이제는 위공자의 눈치를 보며 위나라 왕으로 추대하려 합니다"라고 전한다. 그리고 또 다른 첩자를 보내 위공자에게는 "공자님! 왕으로 즉위하셨습니까? 아직 안 했습니까?"라고 자꾸 묻는다. 말이 씨가 된다는 꼴을 보여주려고,,,,, 이때 위나라 안희왕은 반역 할까 불안하여 위공자의 장군직을 해임해 버린다. 그러자 위공자는 모함으로 내가 이제 더 망가지겠구나라고 생각되어 병을 핑계로 아예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겸손의 아이콘에서 타락의 아이콘으로 변신하여 매일 밤 술과 여색으로 지세다가 술병에 걸려 죽고 만다. (이런 허탈할 때가 다 있나?) 진나라는 위공자가 죽었다는 소식에 장군 몽오를 출정시켜 위나라 성 20개를 빼앗고 동군을 창설하고 그로부터 18년 뒤 위나라는 왕은 진나라에 사로잡히고 대량도 함락당했다.

②그 뒤로 한나라를 세운 유방 고조는 대량 지역을 지날 때마다 위공자의 묘소를 찾아 추모하고 묘지기를 위한 집도 5채나 지어주고 잘 모셨다 하니 한나라 고조 유방은 위공자가 신분이 낮고 비천한 사람들과도 사귀면서 부끄럽지 않게 여기는 것을 알고 유방이 처음 민중 봉기에 참여할 때의 자기 심정과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나 봅니다.

8. 총평

전국시대 사공자 중 다른 공자보다 위공자 신릉군은 존귀와 빈천을 따지지 안으며 겸손하고 신의가 두터워 세상 사람들에게 어질고 으뜸가는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술과 여색의 환락에 빠져 살다가 술병으로 죽었다고 전하니 술 조심 여색 조심은 자고로 오랜 역사의 교훈이려니…..

(오늘날 유명세를 얻었던 빅뱅의 승리가 술로, 슈퍼스타 출신 정준영이 여색으로 여론의 화살을 맞는 것을 보면 옛 선인의 교훈이 하나도 틀림 없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