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신군열전
1. 서문
가) 이번 시간에는 사마천 사기열전에서 소개되는 전국시대의 4명의 공자. 제 맹상군, 조 평원군, 위 신릉군에 이어 , 사공자로서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인물 초나라 춘신군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는 사공자 중 말년이 가장 비참했던 사람입니다.
전국시대 사공자들은 왜 빈객을 맞이하려 했을까요? 각각의 공자들은 빈객의 힘을 빌려 나라의 정치를 돕고, 자신의 권력을 굳건히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인재풀을 구성하고 그들로부터 인재를 찾고 자신의 세력을 키울 목적이었습니다. 여러분의 빈객은 몇 명이나 되시나요?
2. 주제
가) 지혜로움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결단력 없이 지혜만으로는 부족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움도 결단력이 없다면 꽝!)
3. 고사성어
1). 호유미[狐濡尾] (여우 호, 적실 유, 꼬리 미) 여우는 머리가 가볍고 꼬리가 무겁기 때문에 꼬리를 등에 얹고 냇물을 건너는 습성이 있다고 하는데 도중에 힘이 빠져 꼬리가 물에 젖어 건너지 못했다는 옛이야기에서 온 말.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끝마무리를 잘하기가 어려움을 비유함. 소인의 재주로서 큰일을 감당하기 어려움을 비유함. 호유기미(狐濡其尾).
2). 무망지복[無望之福] (없을 무, 바랄 망, 갈지, 복 복) 뜻밖의 행복. 바라지 않은 행복. 반드시 얻게 될 행복.
4. 시대적 배경
가) 춘신군이 살았던 시기는 전국시대 말기로서 진나라가 영토를 동쪽으로 확장하고 나머지 제후국 6국은 서로 분열과 합종을 반복하던 시기. (BC274~238까지 활동)
5. 등장인물
황헐(춘신군(~bc238)), 초나라 경양왕, 태자 완(고열왕), 빈객 주영, 이원, 이원의 여동생, 진나라 소왕, 진재상 범저, 순자(순경)
6. 내용
가)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다 지치면 개도 이길 수 없다 (진의 초나라 침략 계획을 글로서 화친으로 돌린 황헐 이야기)
①기원전 274년경 진나라는 한나라 위나라를 쳐서 복속시키고 이 두 나라에게 군사를 내주어 초나라를 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진나라의 재상 양후(위염)가 발굴한 백기 장군을 동원하여 초나라 땅 검중과 수도 영을 함락하여 차지하였고 초나라 경양왕을 우습게 여기는 시점이었다. 그전에 이미 진나라는 경양왕의 아버지 초나라 회왕을 붙잡아 볼모로 진에 잡고 있다가 초왕이 죽은 이후이다. 초나라는 진나라의 공격이 두려워 공격을 막아보라며 황헐을 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한다. 이에 황헐이 두려움을 갖고 진나라 소왕에게 글로서 자기의 뜻을 올린다.
(황헐이 진 소왕에게 올린 글의 내용을 살펴보자)
-. 진나라가 한. 위를 복속시켰음을 확인해준다.
-. 시경, 서경을 예로 들며 진나라 소왕의 업적은 찬양하면서 일의 시작은 쉽지만 끝맺음은 어렵다며 인(仁)을 베풀어 덕치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뒤에 올 재난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즉 초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생각뿐 한. 위나라가 다시 강해짐을 잊고 있다.
-. 현재 한. 위가 진나라 소왕에게 복종하는 것은 월나라 구천이 오나라 부차에게 복종했던 것과 같다. 한. 위와 진은 오래부터 원한 사는 일이 많았던 관계인데 오늘날 그들에게 진나라 군대를 내주어 초를 치려는 계획은 적절하지 않다. 이는 한. 위가 중원을 차지하고 제나라는 비옥한 초나라를 차지하고 초와 진은 서로 원수지간만 되는 꼴이다. 결국 진. 초 같은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다 지치면 한. 위 같은 약한 개 두 마리가 지친 호랑이를 우습게 여겨 공격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도 한.위를 믿고 초를 치려느냐?
-. 그러니 초와 진이 화친하면 진나라는 한.위를 확실하게 복속시켜 제나라 국경과 맞대게 될 것이고 이렇게 중원인 허리를 차지하면 연. 조 지역과 제, 초 지역의 왕래는 끈기게 되고 그리한 후 연. 조를 겁주고 이어 제. 초를 흔들면 4개 제후국을 모두 복종시킬 수 있는데... 굳이 초를 먼저 치려 하느냐? 이렇게 초나라를 마지막에 취하라며 진나라 소왕에게 포기가 아니라 은근한 기대를 심어주는 변술적 글솜씨 능력 덕분에 글을 읽고 난 진나라 소왕은 백기 장군을 동원하여 한.위를 끌고 초를 치려는 계획을 철회하고 대신 화친을 위한 볼모로 초나라 태자 완(훗날 고열왕)을 진나라로 보내라고 요청한다.
나) 왕통을 이을 태자를 구한 황헐
①진과 화친을 조건으로 bc273년 초나라는 태자 완(훗날 고열왕)을 황헐과 함께 진나로 볼모로 보내고 이후 태자는 진나라의 양후를 몰아내고 재상이 된 범저와 친교를 이룬다. 볼모로 진나라에 온 지 약 9년 정도 지나서 초나라 경양왕이 시름시름 앓자 후사를 걱정하던 황헐은 태자가 초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면 다른 왕의 형제들이 왕위를 물려받게 될까 봐 재상 범저에게 부탁하여 태자를 초나라로 돌려보내 초나라 후사를 이어야 진나라와 계속 화친을 도모할 수 있다며 돌려보내 달라고 간청해 본다. 범저가 이 일을 소왕에게 전하자 소왕은 믿을 수 없다며 태자 대신 황헐이 진짜인지 초나라를 다녀오고 난 후 결정하자고 말한다. 이에 황헐은 태자를 마부 복장으로 위장하여 초나라로 보내고 집안에 칩거하며 시간을 끌다 왕자가 초에 도착할 즈음 소왕에게 이일을 보고한다. 소왕은 노발대발하며 황헐에게 자결을 명한다. 이때 범저가 소왕을 뜯어말리며 돌아간 초 태자 완이 초왕이 되면 그의 총애를 받고 있는 황헐은 초에서 등용될 것이니 황헐을 살려 보내는 것은 진에게도 유익하다고 설득하고 소왕은 동의하여 황헐을 초로 돌려보낸다. 3개월 뒤 태자 단이 초나라 고열왕으로 등극(BC 262년)하고 황헐을 재상으로 임명하고 춘신군이라 명하여 회수 북쪽 땅 12현을 봉토로 하사한다. (이 땅은 15년 뒤 춘신군이 초나라에 중요한 지역 땅이라며 다시 반납하고 대토로 강동 땅을 받는다.)
다) 진과 초의 전쟁
-. 춘신군이 재상이 된 지 4년 차 : 진나라와 조나라가 싸워 장평 전투(BC262~260)에서 조나라 군사가 40만을 생매장당하고 이듬해 조나라 한단(BC259)이 포위되다. 당시 조나라 공자 평원군이 빈객 모수를 이끌고 초나라에 와서 합종을 맺고 조나라에 파병을 단행함. 조나라 빈객은 대모(거북이 등뼈를 깎아 만든 비녀)를 꽂고 칼집은 주옥으로 장식하고 다녔고 이를 맞은 초나라 빈객들은 주옥으로 장식된 신발을 신었다 한다. (당시 각 공자 빈객들 간 허세 작렬... 지금의 연고전 응원전도 아니고..)
-. 재상 8년 차(BC255) : 노나라를 멸망시키고 조나라 직하(학문관)에서 수장 노릇하던 순자(경)를 맞아 난릉 현령으로 삼다. (전국책에 의하면 훗날 춘신군이 순자를 다시 내 쫒았다 함)
-. 재상 14년 차(BC249년) : 진나라는 여불위가 장양왕을 등극시키고 동주까지 차지하고 재상이 되었다.
-. 재상 22년 차(BC241년) : 진을 상대로 제후국 간 합종을 맺고 초나라가 합종의 맹주가 되어 함곡관에서 진과 겨루었으나 패전한다. 전쟁 패전의 책임을 두고 춘신군과 초나라 고열왕은 점차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한다.
-. 춘신군의 빈객 중 주영이라는 사람이 춘신군에게 말하길 사람들은 춘신군 때문에 초나라가 약해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20년 넘게 진나라가 초나라를 함부로 하지 못한 것은 춘신군 노력으로 진나라와 화친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제 위나라와 한나라가 진에 병합되고 진이 동쪽으로 확장해오니 위나라 가까이 있는 현재 초나라 수도 진을 버리고 수춘으로 도읍을 옮겨야 한다고 제안한다. 춘신군은 이에 따랐다. (예전 진나라 재상 양후 때 백기 장군이 초나라 수도 영을 정복하자 초나라는 영에서 진으로 옮겼고 이제 다시 수춘으로 천도하는 것이다)
라) 자리에 연연하여 악마의 소리에 넘어간 춘신군
고열왕이 후손이 없자 춘신군은 지속적으로 후궁을 들였으나 실패를 한다. 조나라 사람 이원이라는 자가 자기 여동생을 초나라 왕에 바치려다가 후궁이 많아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을 알고 동생을 바쳐도 훗날 총애도 못 받을 것 같아 포기하고 춘신군의 빈객이 된다. 얼마 후 고향 다녀온다며 조로 떠났다가 예정보다 늦게 돌아온 이원에게 춘신군이 사정을 물으니 이원이 대답하기를 제나라 왕이 여동생을 달라며 청혼하여 술 한잔 대접하느라 늦었다고 말한다. 이때 춘신군이 "그래 혼인 약속을 하였소?"라고 물으니 "아직은 아니요." 대답하고 "그럼 내게 동생을 주겠소?" 하니 이원이 "당연히 그리 해야죠"하며 여동생을 춘신군에게 바친다. 이후 얼마 있어 그녀가 춘신군의 아이를 임신하자 이원은 여동생과 짜고 모사를 꾸민다. 이원 동생이 춘신군에게 말하길 " 고열왕이 당신을 아끼는 것을 압니다. 왕 덕에 당신이 재상직을 20년 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열왕이 후손이 없으니 조만간 초왕이 병을 앓다가 죽게 되면 그 형제들이 왕위를 물려받게 될 것이고 그리되면 그는 자기 친분 있는 자들을 등용시길 것이고, 당신은 그간 그들에게 밉보이는 일이 많았을 텐데 그때는 당신에게는 재앙이 닥치게 될 것인데 그때도 작위와 봉토를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마침 소첩의 임신 사실은 당신과 나만 알 뿐이오니 저를 고열왕께 바쳐 주시면 제가 훗날 낳는 아이가 아들이면 당신은 초나라의 전권을 잡을 수 있고 잘하면 초나라 고조가 되어 당신의 나라가 될 수 있는데 이대로 재앙을 당하는 것보다 났지 않겠습니까?"라는 제안을 한다. (진나라 여불위가 장양왕(자초)에게 조희를 바쳐 정(진시황제)을 낳는 것과 동일 수법) 춘신군은 이 계책을 받아들여 초왕에게 여자를 바치고 초왕은 그녀를 총애하고 아들을 낳자 왕후 자리에 올린다. 이때부터 이원은 벼슬을 얻고, 혹시나 춘신군이 비밀을 발설하거나 오히려 권세를 더 부릴까 두려워 몰래 춘신군을 죽일 암살 사병을 모집하여 훈련시킨다.
이 일은 당시 춘신군과 초왕은 몰랐어도 초 사람 중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
마)전국사공자 중 유일하게 빈객의 진언을 듣지 않아 비참한 최후를 맞는 춘신군
-. 재상 25년 차(BC238년) : 고열왕이 병에 걸리자 빈객 주영이 춘신군에게 "지금 고열왕이 병이 나서 오늘 낼 오늘 낼 하고 있는데 조만간 당신에게 생각지도 않은 복이 찾아오고 또한 생각지도 않은 재앙이 닥치게 될 수 있는데 (고열왕에 기댈 것이 없는 시점에) 어찌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뜻밖의 인사를 구해두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춘신군이 그 뜻을 묻자 복이란 왕자가 왕이 되면 춘신군은 은나라 이윤 또는 주나라 주공처럼 왕을 대신하는 인물이 되는 것이고, 재앙이란 이 모든 모사를 감추기 위해 이원이 당신을 살해한다는 것이고, 뜻밖의 인물을 구하라는 말은 자기 주영을 낭중으로 임명하여 계략을 꾸민 이원을 먼저 죽이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춘신군은 주영에게 "에이... 무슨 소리요. 이원은 나약한 사람이오 그리고 내가 그 동안 그리 잘 대해 줬는데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라며 일축 하자 주영은 그 뒤로 목숨을 잃을까 잠적해 버렸다. (음흉하고 비열한 자는 항상 겉으로 약자처럼 위장하고 상대를 위하는 것처럼 다가오며 마음 깊이 욕망을 가득 담아 숨기고 있다. 너무 친절한 사람 잘 대해주는 척하는 사람 조심하세요. 이원 같은 인물 인지 모릅니다. ) 70일 뒤 고열왕이 병사하자 이원은 궁문에 군사를 숨기고 있다가 급히 문상을 오는 춘신군의 목을 베고 그 집안 일족을 모조리 죽였다. 이후 태자는 초 유왕으로 등극한다. 이때 진나라는 진시왕이 등극한지 9년 차로 자기 어머니 조희와 가짜 환관 노해가 벌인 불륜이 들통나자 난을 일으킨 노해와 그 삼족을 몰살시키고 모든 일을 꾸민 여불위는 벼슬을 빼앗고 나라에서 쫓아낸다.
7. 태사공평
가) 초나라 춘신군의 성과 궁궐을 찾아가 보니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춘신군이 초나라를 위해 진나라와 화친하고 태자 단을 구한 것은 지혜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원에게 당한 일은 나이 들어 늙어서 사리 판단이 흐려져 그리 했다고 본다. 다만 주영이 상소를 올렸을 때 "세상사 마땅히 결단력 있게 행동할 것을 하지 못하면 도리어 재앙을 얻게 된다"는 말이 있다. 주영의 말을 결단력 있게 받아들였다면 재앙을 맞지 않았을 텐데.....
8. 총평
지금까지 전국시대 각 제후국의 빈객을 둔 사공자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각각의 공자 별로 특색과 장단점을 발견하셨나요?
제나라 맹상군은 풍환이라는 빈객을 통해 위기도 넘기고 권세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민왕의 시기를 받았죠.
조나라 평원군은 사람은 좋아했으나 지혜롭지 못했고 상당 땅을 얻는 것에 이익을 생각하다 장평 전투의 큰 희생을 자초하였다. 하지만 스스로를 천거하는 모수라는 빈객을 얻어 한단을 구할 수 있는 도움을 받았습니다.
위나라 신릉군은 귀천을 따지지 않으며 신의를 지키고 매형 평원군의 나라인 조나라를 구하고 위나라에 공도 세웠으나 역모의 의심을 품은 위왕을 피해 살다가 술병으로 죽고 말았다.
위의 세명의 공자는 빈객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 도움도 받고 했으나 유독 초나라 춘신군만은 빈객을 두고도 혼자 애를 썼고 결국 음흉한 이원이라는 빈객을 받아들여 재앙을 심었고 주영이라는 충성스러운 빈객의 제안을 거절하여 죽음을 맞았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우리 사는 세상사 인생 삶도 이와 별반 차이 없으리니….
오늘날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가 바로 옛 선인의 지혜와 사례를 통해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아보기 위함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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